시인 詩 모음

담배 시 모음

효림♡ 2009. 6. 8. 08:25

* 담배 연기처럼 - 신동엽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멀리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다한
이 안창에의  속상한
두레박질이여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매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다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

 

* 담배 - 김소월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을 잊어버린 옛 시절에

났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 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

하는 사람도 보았어라

어물어물 눈앞에 스러지는 검은 연기

다만 타붙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어.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 가지로 지나가라.

 

* 나와 시와 담배 - 오상순 
나와 시와 담배는
이음(異音) 동곡(同曲)의 삼위일체(三位一體)


나와 내 시혼은
곤곤히 샘솟는 연기

끝없는 곡선의 선율을 타고
영원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刻刻) 물들어 스며든다.

 

* 그대는 담배연기처럼 - 이정하 
인이 박혔다는 말들을 하지요. 그래서 끊을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생각나는 것이 담배라고.
그랬습니다. 그대 또한 내 가슴 깊숙이 인이 박힌 것이어서
잊으려고 하면 외려 더욱 생각나곤 했습니다.

하기사 담배를 끊은 적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한나절을 끊었다 치더라도
온 신경이 부르르 떨리고야 마는 금단현상 때문에
결국엔 두 손 들고 말았었지요.
그랬습니다. 내 목을 댕강 쳐버리기 전에는
결코 끊을 수 없는 담배처럼
그대 또한 내가 죽기 전까지는
결코 끊을 수 없는 인연인가 봅니다.
참으로 내 가슴 깊숙이 인이 박힌 것이어서
새벽녘, 잠 깨었을 때 그대부터 찾게 되는가 봅니다.

* 루즈가 묻은 담배꽁초는 섹시하다 - 정호승 
새벽 미사가 끝나자 눈이 내린다
어깨를 구부리고 눈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롱부츠를 신은 여자가 가로등 불빛 아래 담배를 피우며 서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이라도 한번 더 보기 위하여 찾아온 것일까
큰수녀님은 싸리 빗자루로 성당 앞에 내리는 눈을 쓸고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가 기어내려온 사내처럼
알몸의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여자 앞을 지나간다
여자는 눈송이 사이로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입술을 내던지듯 담배꽁초를 휙 내던진다
눈길에 떨어진
붉은 루즈가 묻은 담배꽁초는 섹시하다
만나기 전에 이미 헤어지고
헤어지기 전에 이미 만난 적이 있었던가
눈은 내리는데
가로등 불빛 아래 하루살이떼처럼 눈송이는 날리는데
여자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다

 

* 담배 - 이하석 
담배 때문에 수명이 짧아진다고 텔레비전에선 야단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죽지 않고 싸우며
여전히, 담배 연기가 아늑하게 인간의 내외에 깔려 있다

그렇지만 나도 결국 끊어야 하지 않을까
하긴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문제고, 그래서
오히려 끊는 게 더 공포스러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끊어야 한다면 담배보다 오히려 더 해로운 것들,
연애나 결혼, 또는 이렇게 시 만드는 일들......
이 치명적인 것들 끊는 게 더 급하지 않을까

담뱃갑이 여기, 오래전부터, 놓여 있다
그리고 재떨이는 거기 놓여 치워지지 않는다
각이 져 있거나 둥글게 파여진 라이터들은
아름다운 무늬나 디자인이 새겨져 그들 곁에 늘 있다
그것들은 서로 없어지지 않는다
끊을 수 없는 사랑처럼 끈질기게
서로 연기 한 모금씩 피워서 나누어 가지길 기대하며 있다

 

* 담배 - 천상병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하는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끊지 못한다.
시인이 만약 금연한다면
시를 한 편도 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시를 쓰다가 막히면
우선 담배부터 찾는다.
담배연기는 금시 사라진다.
그런데 그 연기를 보고 있으면
인생의 진리를 알 것만 같다.
모름지기 담배를 피울 일이다.
그러면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될 터이니까!

 

* 담배 - 김광섭 
나의 담배는
그대를 만나고 싶은 얘기라우
아마 말없는 시간이 타나 보우

 

* 담배를 보는 일곱 가지 눈 - 정현종

하염없는 손들의 마지막 신호.

연기처럼 사라지는 약속.

킹 사이즈의 혼란.

구호에 대한 암호.

등화관제 아래 지각 없는 불빛.

습관적인 무적(霧笛).

아마 우리 숨결의 외출. *

 

* 담배 피우는 男子 - 김선굉

그의 오른손은 이따금씩 왼쪽 가슴 부위를 더듬어

희고 갸름한 마음을 끄집어내어

그 끝에 불을 붙인다

마음이여, 여위었으나 원래 뜨거웠구나!

두 손가락 사이에서 고요히 타오르며

마음은 이윽고 몸의 일부가 된다

푸른 연기로 세계와 이어지는

인화성이 강한 木炭의 몸이 타고 있다

 

* 동년일행(同年一行) - 정희성

괴로웠던 사나이

순수하다 못해 순진하다고 할 밖에 없던

남주는 세상을 뜨고

서울 공기가 숨쉬기 답답하다고

안산으로 나가 살던 김명수는

더 깊이 들어가 채전이나 가꾼다는데

훌쩍 떠나

어디 가 절마당이라도 쓸고 싶은 나는

멀리는 못 가고

베란다에 나가 담배나 피운다 *

 

* 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 최승자

담배 한 대 피우며
한 십 년이 흘렀다
그동안 흐른 것은
대서양도 아니었고
태평양도 아니었다

다만 십 년이라는 시간 속을
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새 한 마리가 폴짝
건너뛰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미래의 시간들은
은가루처럼 쏟아져 내린다) *

* 최승자시집[쓸쓸해서 머나먼]-문지

* 담배 - 김하인  
한 개비 목숨 태우며 스러져간 당신과의 만남을 생각합니다. 한때 별과 달과 나무와 꽃을 다 거느렸던 우리들 사랑의 사원(寺院)을 생각합니다. 전 당신의 종교였고 당신은 제 신앙이었던 시간의 절정을 생각합니다. 한 세계가 저물고 또 다른 세상이 자라는 이 저녁, 전 사랑의 폐허에서 내뿜는 한숨과도 같은 연기를 입으로 토해 냅니다. 제 속에 남은 당신을 토해 냅니다. 전 당신으로 인해 죽음보다 깊은 병으로 죽고 말 겁니다. 다시는 당신처럼 사랑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당신을 떠나보내야만 했는지. 저를 태워 없앤다 해도 이 심연(深淵)의 고통을 해독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허공 속으로 흩어집니다. *

* 김하인시집[눈꽃 편지]-자음과모음

 

* 담배(煙) - 정약용  

陸羽茶經好  劉伶酒頌奇
淡婆今始出  遷客最相知
細吸涵芳烈  微噴看裊絲
旅眠常不穩  春日更遲遲

- 

육우(陸羽)가 지은 다경(茶經)도 좋고
유령(劉伶)의 주덕송(酒德頌)도 기이한 글이지
담바고가 요즘 새로 나왔으니
유배객에게는 가장 잘 어울리지
살짝 빨아들이면 향기 그윽하고
슬그머니 내뿜으면 실처럼 간들간들
객지의 잠자리 언제나 편치 못한데
봄날은 왜 이리도 길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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