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섬진강 23 -편지 두 통 - 김용택

효림♡ 2009. 6. 19. 08:19

* 섬진강 23 -편지 두 통 - 김용택

 

*  어머님께

 

엄마 보고 싶어요

바쁜 철이 되어가니

겨울에 그렇게나마 고와진 손발

또 거칠어지겠군요

엄마 딸

곧 직장 갖게 될 것 같아요

엄마

나 학교 못 다녀도 괜찮아요

너무 걱정 마시고

몸 편하세요

어머니 딸이 된 것

그리고 이렇게 맘이 크게 된 것 감사드립니다.

 

엄마

집에 갔다가 올 때마다

동구 밖까지 짐 이어다 주시고

오래오래 서 계시다가

징검다리 건너

밭에 드시던

어머니 뒤돌아보며

어머니, 어머니 하며 들길 걸을 때

차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고

등뒤 물소리에

목이 메어

산천이 뿌연해지곤 했어요

엄마

이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딸이 될게요

아름다운 하늘 아래

밭 매고 계실 엄마에게

사랑하는 엄마의 작은딸

복숙 올림.

 

* 딸에게 

 

복숙아

니 핵교 그만둔 것

징검다리를 건너다가도

밭을 매다가도

그냥 우두커니 서지고

호미끝이 돌자갈에 걸려

손길이 떨리고

눈물이 퉁퉁 떨어져

콩잎을 다 적신다.

이 에미가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는디

너사 을매나 가슴이 아프겄냐

허지만, 너만 그런 것도 아닌가 보드라

너도 인자 돈벌어

시집 가서 잘 살아라

복숙아

논에 들고 밭에 들어 일헐 때

그냥 너그덜 못 입히고 못 멕이고,

언제 너그들 가욋돈 한번 준 적 있었냐.

그렇게 가르친 걸 생각하면 꼭 죽겄다.

그냥, 공일날만 돌아오면 걱정이 되고

고추 팔고 삼베 팔고 니 애비 모르게

온갖 곡식 되로 말로 퍼내어

알탕갈탕 침이 마르게 돈 주고

이 고샅 저 고샅

발이 닳아지고

입이 닳아지게

돈 꿔다 주고 그래도

너그들 시무룩허게

쌀자루 메고 김치단지 들고 가는 꼴을

밭머리 들다 바라보면

너그 가슴이야 오죽들 혔겄냐만

내 가슴은 그냥 찢어졌단다

복숙아

이 몸뚱아리가 닳아지고 찢어질 것 같은 것이었으면

진즉 다 닳아지고 찢어져버렸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너그들 방학 때 명절 때

끄릿끄릿 줄줄이 집에 오는 것이

곡석들 잎 사이로 보이면

내 자석들, 내 자석들 허며

손길이 빨라지고

내 삭신이래도 떼어 주고 싶었니라

복숙아

니 일 니가 비문히 알아서 허겄냐만

너무 조급히 맘묵지 말아라

멀쩡한 생사람들이 죽고도

다들 살드라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오손도손 우애 있게

사는 것이 질이여

객지생활허는 너그들 다

그냥 몸이나 성혀야 헐 텐디

생각허면 헐수록

꼭 짠혀 죽겄다.

 

복숙아

바라보면 첩첩 산이요

돌아보면

굽이굽이 살아온 물이구나 

 

하루가 다르게

저 앞산 앞내가 푸르러져오고

농사철은 코앞에 닥쳐오는디

홀몸으로 걱정이 저 앞산 같다만

어치고 어치고 또 되겄지야

일자리 잽히면 한번 댕겨가그라

산중에서 못난 니 에미가.

 

산이 참 곱게도 물들고

강이 참 맑기도 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