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진강 23 -편지 두 통 - 김용택
* 어머님께
엄마 보고 싶어요
바쁜 철이 되어가니
겨울에 그렇게나마 고와진 손발
또 거칠어지겠군요
엄마 딸
곧 직장 갖게 될 것 같아요
엄마
나 학교 못 다녀도 괜찮아요
너무 걱정 마시고
몸 편하세요
어머니 딸이 된 것
그리고 이렇게 맘이 크게 된 것 감사드립니다.
엄마
집에 갔다가 올 때마다
동구 밖까지 짐 이어다 주시고
오래오래 서 계시다가
징검다리 건너
밭에 드시던
어머니 뒤돌아보며
어머니, 어머니 하며 들길 걸을 때
차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고
등뒤 물소리에
목이 메어
산천이 뿌연해지곤 했어요
엄마
이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딸이 될게요
아름다운 하늘 아래
밭 매고 계실 엄마에게
사랑하는 엄마의 작은딸
복숙 올림.
* 딸에게
복숙아
니 핵교 그만둔 것
징검다리를 건너다가도
밭을 매다가도
그냥 우두커니 서지고
호미끝이 돌자갈에 걸려
손길이 떨리고
눈물이 퉁퉁 떨어져
콩잎을 다 적신다.
이 에미가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는디
너사 을매나 가슴이 아프겄냐
허지만, 너만 그런 것도 아닌가 보드라
너도 인자 돈벌어
시집 가서 잘 살아라
복숙아
논에 들고 밭에 들어 일헐 때
그냥 너그덜 못 입히고 못 멕이고,
언제 너그들 가욋돈 한번 준 적 있었냐.
그렇게 가르친 걸 생각하면 꼭 죽겄다.
그냥, 공일날만 돌아오면 걱정이 되고
고추 팔고 삼베 팔고 니 애비 모르게
온갖 곡식 되로 말로 퍼내어
알탕갈탕 침이 마르게 돈 주고
이 고샅 저 고샅
발이 닳아지고
입이 닳아지게
돈 꿔다 주고 그래도
너그들 시무룩허게
쌀자루 메고 김치단지 들고 가는 꼴을
밭머리 들다 바라보면
너그 가슴이야 오죽들 혔겄냐만
내 가슴은 그냥 찢어졌단다
복숙아
이 몸뚱아리가 닳아지고 찢어질 것 같은 것이었으면
진즉 다 닳아지고 찢어져버렸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너그들 방학 때 명절 때
끄릿끄릿 줄줄이 집에 오는 것이
곡석들 잎 사이로 보이면
내 자석들, 내 자석들 허며
손길이 빨라지고
내 삭신이래도 떼어 주고 싶었니라
복숙아
니 일 니가 비문히 알아서 허겄냐만
너무 조급히 맘묵지 말아라
멀쩡한 생사람들이 죽고도
다들 살드라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오손도손 우애 있게
사는 것이 질이여
객지생활허는 너그들 다
그냥 몸이나 성혀야 헐 텐디
생각허면 헐수록
꼭 짠혀 죽겄다.
복숙아
바라보면 첩첩 산이요
돌아보면
굽이굽이 살아온 물이구나
하루가 다르게
저 앞산 앞내가 푸르러져오고
농사철은 코앞에 닥쳐오는디
홀몸으로 걱정이 저 앞산 같다만
어치고 어치고 또 되겄지야
일자리 잽히면 한번 댕겨가그라
산중에서 못난 니 에미가.
산이 참 곱게도 물들고
강이 참 맑기도 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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