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진강 27 -새벽길 - 김용택
가네 떠나가네
찔레꽃 핀 강길을 따라
물소리 따라오는
어스름 새벽 달빛 밟으며 가네
가지를 말라고 가지를 말라고
물소리 따라오며
발목을 잡는
설운 강길을 따라
차마 떨어지지 않는
떨리는 발길마다 채이는
눈물을 차며
강냉이잎 사이 달 같은 얼굴들,
아아, 부서지는데
가네 떠나가네
메밀꽃이 하얗게 피고
깨꽃이 지던 삼밭머리
산굽이 돌아오는
새벽 강물 가슴에 채이는데
아부지 아부지
우리 아부지 지겟짐 뒤따라
새벽길 가네
동네 묻히는 산굽이 돌 때
뒤돌아보면
텃논 보릿잎 위로
웅크리고 서서
울지를 마라 울지를 마라
덤불 같은 우리 어매 손짓에
눈물이 앞을 가려
풀꽃 흐려지는
서러운 길
서울길 가네
어매 어매 나는 가네
말없는 아버지 지겟짐 따라가네
우리 어메 날 낳아
가난한 일 속에 날 기른
헐벗은 젖가슴 같은 산천
뻐꾹새 울어 우거지는데
꽃다운 내 열여섯
보리 패는 새벽 논밭에 두고
새벽차 타러
서울길 가네
내 짐 부려놓고
깔 한 짐 베어 짊어지고
새벽길 돌아가는
아부지 아부지
우리 아부지 들길에 두고
기적소리 울리며
만나고 헤어지는
굽이굽이 섬진강 굽이마다
꽃다운 내 열여섯
푸른 물결에 띄우며
서러운 눈물 모퉁이 쓸어안고
기적소리 울리며
서울길 가네
나는 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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