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매미 - 도종환

효림♡ 2009. 7. 8. 08:47

* 매미 - 도종환  

누구에게나 자기 생의 치열하던 날이 있다
제 몸을 던져 뜨겁게 외치던 소리
소리의 몸짓이
저를 둘러싼 세계를
서늘하게 하던 날이 있다

강렬한 목소리로 살아 있기 위해
굼벵이처럼 견디며 보낸 캄캄한 세월 있고
그 소리 끝나기도 전에 문득 가을은 다가와
형상의 껍질을 벗어 지상에 내려놓고
또다시 시작해야 할 가없는 기다림
기다림의 긴 여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 *

* 도종환시집[해인으로 가는 길]-문학동네 

 

* 매미 - 도종환  

장마철에 태어나

장마가 끝나기 전에 죽는 매미가 있다


악을 쓰며 울어도 빗소리에 묻히고

짝지을 몸을 찾아 떠나야 하는데

장대비 쏟아지고 빗물에 날개는 젖어

바람에 진종일 시달리는 나무 위에서

서로를 다정히 더듬어 볼 시간도 없이

허리를 안고 입 맞추어 볼 여유도 없이

몸을 밀어 넣고 몸을 열고

빗물에 젖은 구멍으로 알이 될 것들을 흘려 넣다

미끄러지고 태풍은 휘몰아쳐

비명도 없이 작별의 애잔한 절차도 없이

꺾이는 나뭇가지와 함께 내동댕이쳐지는

한 호흡의 목숨


전쟁을 전후해 태어난 우리들도

그런 매미알이었는지 모른다

세상으로 나오면서 폐허 위에 대고

악을 쓰며 운 것도

매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둘러 알을 슬고 나가 돌아오지 못한 매미도 많았다


식민지 우기에 태어나

전쟁이 터지면서 죽어간 시인들도 매미였다

애잔하게 울다간 한 마리씩의 매미


미처 가 닿지 못한 생의 허공에서 떨어져

눈도 혀도 없고 말조차 땅에 묻은 굼벵이의 몸이 되어

기약 없는 세월을 지내다

겨우 지상에 올라와 눅눅한 허물을 벗고

슬픔의 껍질만을 남긴 채

주어진 짧은 날들을 울다가는

우리도 매미인지 모른다


비는 그치지 않는데

하루나 이틀밖에 남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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