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꽃씨를 거두며 - 도종환

효림♡ 2009. 7. 8. 08:48

* 꽃씨를 거두며 - 도종환


  언제나 먼저 지는 몇 개의 꽃들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이슬과 바람에도 서슴없이 잎을 던지는, 뒤를 따라 지는 꽃들은 그들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시드는 꽃밭 그늘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어 주먹에 쥐며 이제 기나긴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삶에서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들의 사랑임을 압니다. 꽃에 대한 씨앗의 사랑임을 압니다. *

 

 

* 엉겅퀴 꽃씨 - 도종환

엉겅퀴 꽃씨가 바람에 흩어집니다
또다시 여름이 왔습니다
뜨겁게 살자고 약속하기 전에
버릴 것을 모두 버리고
꽃씨 하나로도 더욱 단단한
젊은 그들의 자세는 얼마나 넉넉합니까
쌓아둔 것이 많아서 더욱 불편한 삶
누리고픈 것이 많아서 더욱 괴로운 사람
그것 말고도 우리에겐 버릴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름다운 꽃들이 모두 피었다 지고 난 계절의 끝에
보아주는 이 없는 곳에서도 저 혼자 떳떳하게 피었다
그것마저도 홀연히 버리고
이제 맑은 풀씨 하나로 서서
홀가분하게 가슴을 흔드는 마음은 얼마나 가뿐합니까
이제 이 들의 어디라도 갈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땅의 어느 곳으로도 달려가 뿌리를 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엉겅퀴 꽃씨가 바람에 날립니다
또다시 여름이 깊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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