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장암 - 김용택
밤낮으로 퍼렇게
우는 소나무들을 어떻게 다 달래시는지요
달 뜬 마당에 서면 때로 발밑까기 밀려와 보채는 저 짠
바닷물은 무슨 수로 달래 돌려보내시는지요
큰 바위 속에 들어앉은 부처님을 불러내실 때는 아무도
몰래 얼마나 가슴을 치시는지요
우루루루 잠자리로 굴러오는 내변산 바위들 틈에서
어떻게 숨을 고르게 내쉬어 작은 연못 연꽃을 피우시는지요
가을이면 하늘 한구석을 잘 닦아 쑥부쟁이꽃을 피워두고
우리더러 꽃 봐라! 꽃 봐라! 꽃을 보라 하시는지요
꽃이 어둠이라는 것을 나는 오래오래 몰랐답니다
매화 피면 매화꽃 피는 데로 가고
구절초꽃 피면 구절초가 핀 데로 가고
소쩍새 툇마루에 찾아와 울면 소쩍새 불러 곁에 앉혀 놓고 울게 하고
아! 그렇게 까만 밤이 하얗게 될 때까지 생나무 가지 끝에
붉은 꽃이 터질 때까지 울어나볼걸, 실컷 울어나볼걸.....
울지도 못하고 나는 벌겋게 마른 감잎 위에 내리는
싸락눈 소리에 가슴만 쓸어내렸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데로 가는 것들은 저절로 꽃으로
피었다가 꽃으로 지지요
가면 오고 오면 가듯 지면....또 피지요
다 무심이다
무심한 삶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산을 찾아 진달래
아래에서 놀다가 눈이 멀어
하산길을 찾지 못합니다. 가련하게도, 삶이여! 뜻밖에
꺼지는 절벽같이 끝모를 삶이여! 고개 들어 보면 산이
돌아앉아 있을 뿐입니다
봄은, 왔다가 가는 봄은, 이 세상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제 몸보다 무거운 바람을 한짐씩 짊어지게 합니다
그 짐이 꽃이려니, 꽃이려니 *
* 김용택시집[수양버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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