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편지 - 김용택

효림♡ 2009. 7. 13. 07:48

* 편지김용택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말과

당신의 글이


내 마음과

내 말과

나의 글입니다 

 

* 편지  

편지를 쓴다

빈 나뭇가지에 눈이 온다고

편지를 쓰다가

빈 나뭇가지에 흰 눈이 가고 있다고

편지를 쓴다

눈을 가득 안은

나뭇가지는

춥지 않을 거라고

얼른 눈송이 하나를 받아들고

더 휘어지는

나뭇가지를 보며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 편지

봄비 오는 날 뭐 한다요
책을 보다 밖을 보면 비가오고
비에 마음을 빼앗겨
넋을 놓고
비를 보다
비 따라가던
마음이 문득 돌아오면 다시 책을 봅니다
그러다가 내 마음 나도 모르게 움직여 도로 그리 간답니다
시방 뭐 하시는 지요
나는 오늘 혼자 놉니다
비를 보며, 때로 바람 따라 심란하게 흩날리는 비를 보며 

혼자 놉니다
선암사 홍매가 피어나는지
선암사 홍매는 피는지
선암사 홍매는 피어버렸는지
자꾸 선암사 홍매가 궁금합니다
이끼 낀 가지 끝에 붉은 이슬처럼 맺힌 홍매를 생각하며
빗방울을 따라가다보면 빗방울들이 땅에
툭툭 떨어져 부서지며 튀어오릅니다
산이 적막하고
나도 적막하고
물이 고요하고
나도 고요합니다
고요한 마음에 피는 선암사 홍맷빛이 내 마음에 물결처럼 

일어납니다
일었답니다
내 마음이 자꾸 그리 갑니다
가는 마음 붙잡아 되돌려 앉혀놓아도
마음은 자꾸 그리 달아납니다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선암사 홍매는 한 잎 두 잎 꺼져도
내 마음에 일어난 그리운 꽃빛은 언제나 꺼질지

나는 모른답니다
나도 모른답니다 *

* 김용택시집[그래서 당신]-문학동네

 

* 그리운 꽃편지 3

바람 부는 날은 저물어 강변에 갔습니다
바람 없는 날도 저물어 강변에 갔습니다
바람 부는 날은 풀잎처럼 길게 쓰러져 북쪽으로 전부 울고
바람 없는 날은 풀잎처럼 길게 서서 북쪽으로 전부 울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들 사이에 강물은 얼마나 흘러가고
꽃잎은 얼마나 졌는지요
오늘은 강에 가지 않고 마루에 서서
코피처럼 떨어진 붉은 꽃잎을 실어가는 강물을 보며
그대 있는 북쪽으로 전부 웁니다
전부 웁니다

 

* 그리운 꽃편지 4

봄이 왔습니다
찬바람이 몇 번 지나갔습니다
찬바람이 지날 때마다
겁먹은 풀들은
천지사방으로 몸을 흔들며
바람 속에 숨막혀 꽃잎을 떨구며
핏줄이 터지게 흔들리다가
바람이 지나간 후에
납작하게 누워
붉디붉은 하늘로
붉은 숨을 뿌리며 울었습니다
목이 터지게 울었습니다

여름이 왔습니다
큰물이 몇 번 지나갔습니다
큰붉덩물이 지나갈 때마다
풀들은 흙탕물 속에서
뿌리와 꽃잎을 뜯기며
숨막혀 흔들리다가
물이 지나간 후에
납작하게 엎드려
풀들은 붉은 흙을 피처럼 토하며 울었습니다
목이 찢어져라 울었습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큰물은 남쪽으로 흘렀고
큰바람은 북쪽으로 불었으므로
풀들은 일어나
꽃을 또 피웠습니다
아이들이 꽃잎을 따다가
가을 바람에 날리어
강물에 실어 보냈습니다
꽃잎들은 떠나가며 울었습니다
물보다 깊이깊이 울었습니다

겨울이 오고
꽃이 없는 풀들은
자기보다 더 길고 더 멀리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쓰러졌습니다
그 위에 하얀 눈이 내려
이 세상을 다 덮었습니다
그 흰 눈 위에
피 묻은 발자국들이 응달진 산 속으로
수없이 숨어들었습니다
봄이 오면 살아날
진달래, 진달래꽃입니다

 

* 그리운 꽃편지 5

밖에 찬바람이 붑니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은
당신이 그리워
찬바람 소리 들리는
겨울산에 갑니다

겨울 찬바람 속에서도
꽃망울들은 맺혀 꽃소식 기다립니다
오셔요
꽃망울 터뜨릴 꽃바람으로 오셔요
꽃바람으로 저 푸르른 산맥을 넘어
그대가 달려오면
나도 꽃망울 터뜨리며 꽃바람으로
저 푸르른 산맥을 넘어
찬바람 속을 뚫고 달려가겠어요.
밖엔 찬바람이 붑니다
이렇게 바람 불어 당신이 그리우면
당신을 찾으러
숨찬 겨울산을 몇 개 더 넘습니다 *

* 김용택시집[참 좋은 당신]-시와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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