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 김용택
너를 만나려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이 길을
나는 왔다
보아라
나는 네 앞에서만
이렇게 눈부신 나를 그린다 *
* 김용택시집[참 좋은 당신]-시와시학사
* 길
사랑은
이 세상을 다 버리고
이 세상을 다 얻는
새벽같이 옵니다
이 봄
당신에게로 가는
길 하나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 길가에는 흰 제비꽃이 피고
작은 새들 날아갑니다
새 풀잎마다
이슬은 반짝이고
작은 길은 촉촉히 젖어
나는 맨발로
붉은 흙을 밟으며
어디로 가도
그대에게 이르는 길
이 세상으로 다 이어진
아침 그 길을 갑니다. *
* 김용택시집[참 좋은 당신]-시와시학사
* 길
실낱같이 가는 샛길로 샛길로 가서
마지막 샛길 끝에
말이라도 걸면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슬픈 초가 한 채
아무도 가지 않고
이따금 내가 가다가 해 져서
길 잃고 길 없이
돌아온다
* 단 한 번의 사랑
이 세상에
나만 아는 숲이 있습니다
꽃이 피고
눈 내리고 바람이 불어
차곡차곡 솔잎 쌓인
고요한 그 숲길에서
오래 이룬
단 하나
단 한 번의 사랑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람입니다 *
* 길
애초에 이세상에 길이 없었듯이
그대에게 이르르는 길은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를 향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이 그리움은
이제 아무 데로나 가도
다 당신에게 이르르는 길이 됩니다
이 끝도 갓도 없는
사랑의 가시밭길이
* 길
나무 하다 건너다보면
버들피리 불며 보리밭을 매던 너
네가 오지 않으면 내가 가고
내가 가지 않으면 네가 오고
서로 생각하며 가다오다 만나면
문득 얼굴 들어 함께 웃던
꽃 피고 지며 눈 나리던 강길
우리 다시 오고 가지 못할 길같이
풀들이 우북하게 자라 길을 덮었어도
구월은 어김없고
강물은 반짝이며 흐르는구나
보리풀 하다 보면 빨래하던 너
물 불은 강을 건너서
고운 맨발로도 오던 네가
신을 신고도 못 오는구나
빤히 건너다보이는 너의 집 마당
붉은 고추를 널고 담던 너
마음이 가면
달 없는 밤 눈을 감고도 갔던 내가
환한 대낮 눈을 뜨고도 막히는구나
자고 일어나보니
갈길이 막혀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다가
돌아섰던 너와 나
내가 가지 않으면 네가 와야 하고
네가 오지 않으면 내가 가야만 할
수많은 가슴 아픈 세월이 흘렀어도
강물은 저 위로 시퍼렇고
딴길로 갈 수 없는 우리 사랑은
철책선 이 건너 저 건너
산그늘 강길에 내려
포탄에 찢기던 들국들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너와 내가 오가던 발자국 따라
하얗게 피며
아무도 막지 못하는
마음이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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