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 김용택
지금
어디서 어디만큼 왔습니까. 또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여긴 어디고 한발 내디뎌 거긴 어디랍니까
바람 앞에 앉아 숲입니다. 바람 부는 숲이지요
이 길도 평지를 지나 산굽이를 돌고 고개를 넘어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겠지요
가본 길이 세상에 있기는 있을까요
길에는 노란 잔디나 푸른 잔디가 누워 있어도 좋고
발길에 잔 돌멩이들이 채여도 좋지요
돌멩이들은, 채이면 서로 부딪쳐 희게 눈을 뜨며 아침에 울지요
생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섭니다. 그러나 길은 닮아서
어디서 많이 본 듯도 한 나무들이 내 쪽으로 돌아섭니다
나무가 나무 뒤로 숨기도 하네요
저 모습이 어디서 본 듯도 하여 전혀 낯설지는 않지요
서 있는 나무들이 낯익다는 것은 생시라는 뜻이겠지요
사는 게 순간이지요. 바람이고, 티끌이지요. 뜻 없지요
때로 너무 느닷없고, 뜬금없고, 아슬아슬 무구하지요
그러나 감당 못한 슬픔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답니다
모르지요. 몰라서, 다 몰라도 나는 갈래요
인생도 사랑도 가면 막힌 듯 벼랑 끝이지만
한발 내디뎌 새 땅이 세상에서 오지요
천길 만길 허공속에 한발 디뎌 찾은 그 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다가 끝내 이르지 못하고 죽었다던
오래된 그 무서운 길, 길이 없다는 그 사랑의 길을 가볼랍니다 *
* 김용택시집[수양버들]-창비
'김용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 - 김용택 (0) | 2009.08.06 |
---|---|
[스크랩] 별 하나 ... 김용택 (0) | 2009.07.27 |
길 - 김용택 (0) | 2009.07.16 |
야반도주 - 김용택 (0) | 2009.07.15 |
편지 - 김용택 (0) | 2009.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