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효림♡ 2009. 7. 22. 07:50

*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나뭇가지가 바람에 뚝뚝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거리에 유난히 작고 가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나뒹구는 것은
새들로 하여금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작고 가늘게 부러지지 않고
마냥 크고 굵게만 부러진다면
어찌 어린 새들이 부리로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하늘 높이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인간의 집을 짓는 데 쓸 수 있겠는가 *

 

* 정호승시집[포옹]-창비 

'정호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의 맑은 차향기가 되라 - 정호승  (0) 2009.07.22
거위 - 정호승  (0) 2009.07.22
허물 - 정호승  (0) 2009.07.22
다시 벗에게 부탁함 - 정호승  (0) 2009.07.21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0) 2009.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