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구절초꽃 시 모음

효림♡ 2009. 9. 24. 07:51

* 무식한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絶交다! *

* 구절초꽃 - 김용택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에
산 너머 그 너머 검은 산 너머
서늘한 저녁달만 떠오릅니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달빛만 하얗게 모여듭니다
소쩍새만 서럽게 울어댑니다 *

 

*구절초(九節草) - 박용래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메디메디 눈물 비친 사랑아 *

 

* 구절초 - 유안진  
들꽃처럼 나는
욕심 없이 살지만

그리움이 많아서
한이 깊은 여자

서리 걷힌 아침나절
풀밭에 서면

가사장삼(袈娑長衫)입은
비구니의 행렬

그 틈에 끼여든
나는 

구절초

다사로운 오늘 별은
성자(聖者)의 미소 *

 

* 구절초 - 신달자 

무주구천동 오르는 계곡
구절초 한마당
가락으로 흐르고 있네요
하필이면 그 음절이
꼭 울 엄마 가슴 에던
그 곡조 같아서
나 바람 속에 취해 흥얼거리는
구절초 한 송이 꺾어
입술에 대니 그렇구나
울 엄마 낮술에 취해 있던
그 내음 그 노래라 *

 

* 구절초 - 오세영

하늘의 별들은 왜 항상

외로워야 하는가.

왜 서로 대화를 트지 않고

먼 지상만을

바라다보아야 하는가.

무리를 이루어도 별들은 항상

홀로다.

늦가을 어스름

저녁답을 보아라. 

난만히 핀 한 떼의 구절초꽃들은

푸른 초원에서만 뜨는 별,

그가 응시하는 것은 왜 항상

먼 산맥이어야 하는가. * 

* 山구절초 - 김해화

밤새 하얗게 하얗게 서리 내려 내 가슴 뒤척이다가 시들어 은행잎 수북히 쌓인 길 쭉정이 몸 웅크리고 상처 위에 상처 덧쌓일까 발 비켜 딛으며 공사장 가는 새벽 안개 속 피어오르는 그리운 얼굴 있어 눈물 피잉 돌아 쳐다본 언덕

 

가슴 속에서 걸어 나가

저기

하얗게 핀

그리움

 

* 구절초 - 석여공 

구절초 꽃몸 허기지게 쓰러지는 날이면

마른 꽃줄기 바람에 흔들리듯

네 눈썹도 그렇게 가녀린 것이었다

산에 눈 박고 앉았다고

새 나는 것 볼 수 없으랴

구절초 꽃모가지 시린 날에도

허공중에서 너를 끄집어내

애 터지게 읽고 있는 걸 *

* 석여공시집[잘 되었다]-문학의전당 

 

* 구절초엽서 - 이정자
먼 산 가까워지고 산구절초 피었습니다
지상의 꽃 피우던 나무는 제 열매를 맺는데
맺을 것 없는 사랑은 속절없습니다
가을 햇살은 단풍을 물들이고 단풍은 사람을 물들이는데
무엇 하나 붉게 물들여보지도 못한
생이 저물어 갑니다
쓸쓸하고 또 쓸쓸하여
찻물을 올려놓고 먼 산 바라기를 합니다
그대도 잘 있느냐고
이 가을 잘 견디고 있느냐고
구절초 꽃잎에 부치지 못할 마음의 엽서 다시 씁니다

 

* 구절초 시편 - 박기섭
찻물을 올려놓고 가을 소식 듣습니다
살다 보면 웬만큼은 떫은 물이 든다지만
먼 그대 생각에 온통 짓물러 터진 앞섶
못다 여민 앞섶에도 한 사나흘 비는 오고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허기를 버리는 강
내 몸은 그 강가 돌밭 잔돌로나 앉습니다
두어 평 꽃밭마저 차마 가꾸지 못해
눈먼 하 세월에 절간 하나 지어놓고
구절초 구절초 같은 차 한 잔을 올립니다

 

* 구절초의 북쪽 - 안도현  

흔들리는 몇 송이 구절초 옆에

쪼그리고 앉아본 적 있는가?

흔들리기는 싫어, 싫어, 하다가

아주 한없이 가늘어진 위쪽부터 떨리는 것

본 적 있는가? 그러다가 꽃송이가 좌우로 흔들릴 때

그 사이에 생기는 쪽방에 가을햇빛이

잠깐씩 세들어 살다가 떠나는 것 보았는가?

구절초, 안고 살아가기엔 너무 무거워

가까스로 땅에 내려놓은 그늘이

하나같이 목을 길게 빼고, 하나같이 북쪽으로

섧도록 엷게 뻗어 있는 것을 보았는가?

구절초의 사무치는 북쪽을 보았는가? *


* 물안리 쑥부쟁이 - 김혜경
선창 끝에 파도가 쭈그리고 걸려 있다
바람이 작은 게를 낚시에 끼운다
파도도 물살 다듬으며 낚시를 한다
꼬물대며 미끼에 걸려든 문어
찰칵 마을의 내력을 찍어 인화하는 햇볕
문어는 먹이를 놓지 않으려다
그만 다리 하나를 잃고 물 속으로
파아파아 헤엄쳐 간다
노인은 한참동안 문어가 간 물길을 쳐다본다
오랫동안 창을 갈지 않은 집
덜컥덜컥 깨진 창 바람이 비릿하다
어둠이 석간 신문을 펴면
하얀 쑥부쟁이 물안리 구석구석
숨겨진 기사를 복간한다

 

* 쑥부쟁이꽃 - 박남준
하늘 하늘 갓  피어난 쑥부쟁이 꽃들이 바람을 타고 춤추는 모습, 참으로 보기에도 어여쁘다 어디 이쁘지 않은 꽃 있으랴만 스무살, 서른살, 그리고도 이제 서른 다섯의 나이, 거울을 보면 어찌 이러할까 추한 몰골 한 십년 아니면 이십년 다시 삼십년이 흐른 후

그때는 보일까 만날 수 있을까 거울 속에 연보라 쑥부쟁이꽃의 웃음

 

* 상처받은 자에게 쑥부쟁이 꽃잎을 - 박남준

쑥부쟁이 그 목 긴 꽃그늘이 바람결에 사위어가는 강길을 따라
가슴에 못을 박은 사랑을 보냈는가
짐승처럼 웅크린 채 한 사내가 울고 있다
언젠가는 사랑에 비하면 오늘의 상처는 턱없이 가벼우리라
쑥부쟁이꽃들 그 여린 꽃잎 가만가만 풀어 보내
사내의 물결쳐가는 뒷등을 잔잔히 껴안는다

 

* 갯쑥부쟁이 - 홍해리(洪海里)  
눈 속에서도 자주꽃을 피우고
땅에 바짝 엎드려 있던
계집애, 잊었구나, 했더니
아직 살아 있었구나, 너
이 나라 남쪽 바다 우는 기슭에

 

* 쑥부쟁이 사랑 - 정일근

사랑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
가을 들어 쑥부쟁이 꽃과 처음 인사했을 때
드문드문 보이던 보랏빛 꽃들이
가을 내내 반가운 눈길 맞추다 보니
은현리 들길 산길에도 쑥부쟁이가 지천이다
이름 몰랐을 때 보이지도 않던 쑥부쟁이 꽃이
발길 옮길 때마다 눈 속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
이름을 알면 보이고 이름 부르다 보면 사랑하느니
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 모든 꽃송이
꽃잎 낱낱이 셀 수 있을 것처럼 뜨겁게 선명해진다
어디에 꼭꼭 숨어 피어 있어도 너를 찾아가지 못하랴
사랑하면 보인다. 숨어 있어도 보인다

* 쑥부쟁이 - 박해옥  

저녁놀 비끼는 가을언덕에

새하얜 앞치마 정갈히 차려입은 꼬맹이 새댁

살포시 웃음 띤듯하지만

꽃빛을 보면 알아

울음을 깨물고 있는 게야


두 귀를 둥글게 열어 들어보니

내 고향 억양이네

정성스레  냄새를 맡아보니

무명적삼서 배어나던 울엄니 땀내

울먹대는 사연을 들어보니

무망중에 떠나온 길이 마지막이었다는


고향집 언저리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쑥부쟁이야 쑥부쟁이야

층층시하 시집살이가 고달픈 거니

오매불망 친정붙이들 그리운 거니


옮겨 앉은 자리가 정 안 붙고 추운 것은

돌아갈 옛집을 갈 수 없기 때문이야

 

* 쑥부쟁이 - 나종영
가난한 마음으로 그대에게 가는
길섶에 쑥부쟁이꽃 피었네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낯익은 길가에
난생 처음 보듯 가슴 두근거리며
철지난 쑥부쟁이꽃 보네
누군가 외로움에 떨며 지나간 길가에
누군가 연분홍 사랑도 시들어진 풀섶에
그대가 고이 남겨 놓았나
잠시 눈빛 식혀주고 어서오라고
먼길 쉬임없이 살펴오라고
그대가 새벽 별빛 아래 걸어 놓았나
돌아서면 꽃이파리 바람에 부서질까
가던 발길 미어지는데
찬 서리 머리에 인 채
그대에게 가는 길 환히 비쳐주는
그대 닮은 쑥부쟁이 꽃 하나


쑥부쟁이 피었구나, 언덕에 - 이준관  

쑥부쟁이 피었구나, 언덕에
쑥부쟁이야, 너를 보니
모두들 소식이 궁금하구나

늙은 어머니의 마른 젖꼭지를 파고들던
달빛은 잘 있는가

전봇대에 오줌을 갈기던 개는
달을 보고 걸걸걸 잘 짖어대는가

해거리를 하는 감나무에
올해는 유난히 감이 많이 열렸는가

볼때기에 저녁 밥풀을 잔뜩 묻히고 나와
아아아아 산을 향해
제 친구를 부르던 까까머리 소년은
잘 있는가

 

* 쑥부쟁이 - 나태주

개울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오시오

외다리 짚고 서서
고기 찍고 있는 해오라기
두어 마리 만날 수 있을 거요

더 위로 거슬러
거슬러 올라오시오

고삐에 매여서도
마른 풀잎 씹고 있는
누렁소 한 마리
검정염소 또 몇 마리
만날 수 있을 거요

물소리 높아졌다가
자즈라지는 곳쯤에서
나를 찾으시오

서리 내린 뒤에도
하늘 향해 웃고 있는
연보랏빛 쑥부쟁이
몇 송이, 그게 나요

나한테 하고 싶었던
말씀 있거든
그 쑥부쟁이한테
놓고 가시구려 

쑥부쟁이  바람에
고개를 흔들거든
당신의 말씀
알아들은 줄
아시구요
 

 

* 쑥부쟁이 - 양채영

향정리엔
헐쭘한 쑥부쟁이들이 나서
언덕마다 쑥부쟁이 냄새를 피우고
그 쑥부쟁이 냄새가 불러들인
쑥빛 하늘이 알맞게 떠 있다.
누군가 기다리는
황토 마당 구석엔
튼튼하고 실한
시루봉이 쑥 들어앉아
아들 낳고 딸 낳아
이젠 골짜기마다 빈 자리 없이
쑥부쟁이꽃을  피우고..... *

 

* 쑥부쟁이꽃 - 정대구 
쑥부쟁이꽃
그 이름처럼 쑥부쟁이로 핀다

흩어지고 무너지는 가을 들녘
논틀발틀 산기슭 어름에
미친년 지껄이듯
푼수처럼 찍힌 노란 물방울
허드레로 핀다

소슬바람 붙들고 오소소 흔들리는
어린 쑥부쟁이꽃

 

* 갯쑥부쟁이 꽃 - 이생진

식물도감을 보면
긴털갯쑥부쟁이는
11월에서 다음해 2월까지
제주도나 그밖에 남부 지방 해변에서
피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마라도 풀밭에는
9월 화창한 가을 문턱에 피어 있다
이놈이 날 반기느라
도감을 이탈한 것인가
그 이탈은 참 예쁘다
민들레와 엉겅퀴는 사별을 하고
너는 혼자 살아도 예쁘다
파도 소리가 들리지?
혼자서 파도 소리 듣는
네 귀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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