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가을 시 모음

효림♡ 2009. 9. 28. 08:55

* 가을 -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 가을 - 김용택

산그늘 내린 메밀밭에 희고 서늘한 메밀꽃이라든가

그 윗밭에 키가 큰 수수 모가지라든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깊은 산속 논두렁에 새하얀 억새꽃이라든가

논두렁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노랗게 고개 숙인 벼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농부와 그이 논이라든가

우북하게 풀 우거진 길섶에 붉은 물붕숭아꽃 고마리꽃 그 꽃 속에

피어 있는 서늘한 구절초꽃 몇송이라든가

가방 메고 타박타박 혼자 걸어서 집에 가는 빈 들길의 아이라든가

아무런 할말이 생각나지 않는 높고 푸른 하늘 한쪽에 나타난 석양빛이라든가

하얗게 저녁 연기 따라 하늘로 사라지는

저물 대로 다 저문 길이라든가

한참을 숨가쁘게 지저귀다가 금세 그치는 한수형님네 집 뒤안 감나무가 있는 대밭에 참새들이라든가

마을 뒷산 저쪽 끄트머리쯤에 깨끗하게 벌초된

나는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고요한 무덤들이라든가

다 헤아릴 수 없이 그리웁고

다 헤아릴 수 없이 정다운

우리나라의 가을입니다

 

* 초가을 1 - 김용택  

가을인갑다

외롭고, 그리고

마음이 산과 세상의 깊이에 가 닿길 바란다

바람이 지나는갑다

운동장가 포플러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가

어제와 다르다

우리들이 사는 동안

세월이 흘렀던 게지

삶이

초가을 풀잎처럼 투명해라

 

* 초가을 2 - 김용택  

산 아래

동네가 참 좋습니다

벼 익은 논에 해 지는 모습도 그렇고

강가에 풀색도 참 곱습니다

나는 지금 해가 지는 초가을

소슬바람 부는 산 아래 서 있답니다

산 아래에서 산 보며

두 손 편하게 내려놓으니

맘이 이리 소슬하네요

초가을에는 지는 햇살들이 발광하는 서쪽이

좋습니다

 

* 가을이 가는구나 - 김용택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아름다운 시 한 편도

강가에 나가 기다릴 사랑도 없이

가랑잎에 가을빛같이

정말 가을이 가는구나


조금 더

가면

눈이 오리

먼 산에 기댄

그대 마음에

눈은 오리

산은

그려지리

 

*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가을 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 가을 저녁 - 도종환  

기러기 두 마리 날아가는 하늘 아래
들국화는 서리서리 감고 안고 피었는데
사랑은 아직도 우리에게 아픔이구나
바람만 머리채에 붐비는 가을 저녁

 

* 가을 들녘 - 용혜원  

기차를 타고

지나는 들녘마다

황금색 물결을 자랑하고 있었다


열차의 창으로 내다보이는

낯익은 시선의 감나무에

익어 가는 감들이

"나 익었어요!" 하며

즐겁게 소리지르고 있었다


가을 들녘을 달려가며

풍요로움에 행복해졌다

 

* 가을을 파는 꽃집 - 용혜원

꽃집에서

가을을 팔고 있습니다

가을 연인 같은 갈대와

마른 나뭇가지

그리고 가을 꽃들

가을이 다 모여 있습니다

하지만

가을 바람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거리에서 가슴으로 느껴 보세요

사람들 속에서 불어 오니까요

어느 사이에

그대 가슴에도 불고 있지 않나요

가을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

가을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은

가을을 파는 꽃집으로

다 찾아오세요

가을을 팝니다

원하는 만큼 팔고 있습니다

고독은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 가을 - 정호승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 가을꽃 -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黃菊)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

 

* 가을 - 안도현

사과가 익었다고
콕콕 쪼아대더니

부리 끝이 시다고
깍깍대는 때까치

 

* 가을 햇볕 - 안도현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먹는

고추장도 되고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 가을의 소원 -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 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

* 안도현시집[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 

 

* 가을 엽서 -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 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 가을 편지 - 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 추풍(秋風)에 부치는 노래 - 노천명
가을 바람이 우수수 불어 옵니다 신이 몰아오는 비인 마차소리가 들립니다
웬일입니까 내 가슴이 써-늘하게 샅샅이 얼어듭니다
[인생은 짧다]고 실없이 옮겨본 노릇이 오늘 아침 이 말은 내 가슴에다
화살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나는 아파서 몸을 추설 수가 없습니다
황혼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섭니다 하루하루가 금싸라기 같은 날들입니다
어쩌면 청춘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까 연인들이여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은 듯이 지나가버리는 생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그대 만나거든
마음대로 앉아 노니다 가시오 남이야 뭐라든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밤을 도와 하게 하시오 총기(聰氣)는 늘 지니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금싸라기 같은 날들이 하루하루 없어집니다
이것을 잠가둘 상아궤짝도 아무것도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낙엽이 내 창을 두드립니다 차시간을 놓친 손님모양 당황합니다
어쩌자고 신은 오늘이사 내게 청춘을 이렇듯 찬란하게 펴 보이십니까

 

* 가을 - 피천득  

호수가 파랄 때는

아주 파랗다


어이 저리도

저리도 파랄 수가


하늘이, 저 하늘이

가을이어라

 

* 가을시 겨울사랑 - 전재승  

가을엔
시(詩)를 쓰고 싶다
낡은 만년필에서 흘러나오는
잉크 빛보다
진하게
사랑의
오색 밀어(密語)들을
수놓으며
밤마다 너를 위하여
한 잔의 따뜻한 커피 같은
시(詩)를
밤새도록 쓰고 싶다

 

* 가을부근 - 정일근  
여름내 열어놓은 뒤란 창문을 닫으려니
열린 창틀에 거미 한 마리 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미에게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호박잎이 무성한
뒤뜰 곁이 명당이었나 봅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에 더위가 묻어나는 요즘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나, 새 집을 마련하는 일도
사람이나 거미나 힘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거미를 몰아내고 창문을 닫으려다 그냥 돌아서고 맙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여름을 보낸 사람의 마음이 깊어지듯
미물에게도 가을은 예감으로 찾아와
저도 맞는 거처를 찾아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 가을은 아름답다 - 주요한  

빗소리 그쳤다 잇는

가을은 아름답다
빛 맑은 국화송이에
맺힌 이슬 빛나고
꿩 우는 소리에 해 저무는

가을은 아름답다

곡식 익어 거두기에 바쁘고
은하수에 흰 돛대 한가할 때
절 아래 높은 나무에
까마귀 소리치고
피묻은 단풍잎 바람에 날리는

가을은 아름답다

물 없는 물레방아 돌지 않고
무너진 섬돌 틈에서
달 그리운 귀뚜라미 우지짖는
멀리 있는 님생각 간절한
한 많은 철이여!
아름다운 가을이여!

 

* 늦가을 - 김지하

늦가을

잎새 떠난 뒤

아무 것도 남김 없고

내 마음 빈 하늘에

천둥소리만 은은하다

 

* 늦가을 아침 - 황동규  

베어진 나무 앞에는

물 반쯤 담긴 연못이 있어

아침이면 반쯤 밝을녘에

말없이 다가가 등걸 위에

나무처럼 서 있고 서 있고 하였더니

 

어느 날 마음속에

가지와 앞이 돋고

또 어느 날은 꽃이 피어

오동꽃 사촌 꽃 피어 못물에 비치고

동네 새들이 찾아와

내려앉으려 돌고 돌고 하더니

 

막 내린 서리 핥으며 낙엽이 굴러와

발 앞에 멈춘다

아 등걸 위에 다른 사람이 올라서 있구나

아 이제 마음 벗어놓고......

 

* 가을볕 - 박노해

흙 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 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 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 가을에는 - 오광수 

가을에는 나이 듬이 곱고도 서러워

초저녁 햇살을 등 뒤에 숨기고

갈대 사이로 돌아보는

지나온 먼 길

놓아야 하는 아쉬운 가슴

그 빈자리마다

추하지 않게 점을 찍으며

나만 아는 단풍으로 꽃을 피운다

 

* 가을날(Herbsttag)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태양 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나날을 베풀어 주소서,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해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감미로움이 깃들이게 해 주소서. 


지금 집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홀로있는 사람은 오래오래 그러할 것입니다.

깨어서, 책을 읽고, 길고 긴 편지를 쓰고,

나뭇잎이 굴러갈 때면, 불안스레

가로수길을 이리저리 소요할 것입니다. *

 

HERBSTTAG - Rainer Maria Rilke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s sehr gro ß.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ß die Winde los.

 

Befiehl den letzten Früchten voll zu sein;

gie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

drä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üße in den schweren Wein.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ätter treib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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