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장식론(裝飾論)1~4 - 홍윤숙

효림♡ 2009. 10. 26. 08:05

* 장식론(裝飾論)1 - 홍윤숙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때문이다


"씻은 무우" 같다든가

"뛰는 생선" 같다든가

(진부한 말이지만)

그렇게 젊은 날은

"젊음" 하나만도

빛나는 장식이 아니었겠는가


때로 거리를 걷다 보면

쇼우윈도우에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에

사뭇 놀란다


어디에

그 빛나는 장식들을

잃고 왔을까

이 피에로 같은 생활의 의상들은

무엇일까


안개같은 피곤으로

문을 연다

피하듯 숨어 보는

거리의 꽃집


젊음은 거기에도

만발하여 있고

꽃은 그대로가

눈부신 장식이었다.


꽃을 더듬는

내 흰 손이

물기 없이 마른

한 장의 낙엽처럼 쓸쓸해져

돌아와  

몰래

진보라 고운

자수정 반지 하나 끼워

달래어 본다 *

  

* 장식론 2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지닌 꿈을 하나씩

잃어가기 때문이다

 

꽃이 진 자리의

아쉬움을

손가락 끝으로

가려보는 마음

나뭇잎으로

치부를 가리던

"이브"의 손길처럼

간절한 것이기에

꽃 대신 장식으로

상실을 메꾸어 보는 것이다

  

* 장식론 3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원시의 숲에

사내들을 부르던

여자의 비음같은

교태가 아니었을까

 

* 장식론 4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떨어버릴 때

씻은 그릇처럼

정결해질까 

 

* 달 같은 사람하나 
달 같은 사람 하나 어디 없을까
보름달 아닌 반달이거나 초승달 같은
어스름 달빛처럼 가슴에 스며오고
흐르는 냇물같이 맴돌아가는
있는 듯 없는 듯 맑은 기운 은은하게
월계수 향기로 다가왔다가
그윽한 눈길 남기고 돌아가는
큰소리로 웃지 않고
잔잔한 미소로 답하고
늘 손이 시려 만나도 선듯
손 내밀지 못하는
그럼에도 항상 가슴에
따듯한 햇살 한 아름 안고 있는
그런 사람 세상 끝에라도
찾아가 만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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