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송(頌) - 떠남·86 - 유자효
자작나무 잎은 푸른 숨을 내뿜으며
달리는 마차를 휘감는다
보라
젊음은 넘쳐나는 생명으로 용솟음치고
오솔길은 긴 미래를 향하여 굽어 있다
아무도 모른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길의 끝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아직 없다
두려워 말라
젊은이여
그 길은 너의 것이다
비온 뒤의 풋풋한 숲속에서
새들은 미지의 울음을 울고
은빛 순수함으로 달리는
이 아침은 아름답다
* 당신을 사랑합니다
절망에 찬 울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가누지 못하는 연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일상이 돼버린 불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병을 똑같이 앓으시는
당신을 사무치게 사랑합니다
* 속도
속도를 늦추었다
세상이 넓어졌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세상이 더 넓어졌다
아예 서 버렸다
세상이 환해졌다 *
빈 들판에 홀로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동행도 친구도 있었지만
끝내는 홀로 되어
먼 길을 갔습니다
어디로 그가 가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따금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아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홀로였기에
어느 날 들판에 그가 보이지 않았을 때도
사람들은 그가 홀로 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없어도 변하지 않는 세상
모두가 홀로였습니다
* 유자효시집[아쉬움에 대하여]-책만드는집
* 가을의 노래
잃을 줄 알게 하소서
가짐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잃음인 것을
이 가을 뚝뚝 지는 낙과의 지혜로
은혜로이 베푸소서
떠날 줄 알게 하소서
머무름보다 더 빛나는 것이 떠남인 것을
이 저문 들녁 철새들이 남겨둔 보금자리가
약속의 훈장이 되게 하소서
* 사람을 찾소
니 지끔 어데 있노
어릴 적부터 우예 아심찬타 캤더마는
내가 너그 집에 갔더이
니 식구는 흔적도 없고
집은 다 뿌아졌더라
그기 인자 니 집이기는 하다마는
내 한테는 외갓집 아이가
외할배랑 할매랑 외삼춘이랑
내 어릴적 온갖 추억이 다 있는 집 아이가
그걸 니가 팔아뿌리 ㅆ다카이
그라고 일자 소식도 없으이
니 와이라노
집은 없어져도
사람이 더 크제
새끼들은 인자 다 성가시키 ㅆ나
그 이뿌던 제수씨랑
니 지끔 어데 있노
이 불쌍한 놈아
숨는기 다가 아이라카이
인자 제발 소식 좀 도고
* 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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