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아침 송(頌) -떠남·86 - 유자효

효림♡ 2009. 11. 16. 08:49

* 아침 송() - 떠남·86 - 유자효  

자작나무 잎은 푸른 숨을 내뿜으며

달리는 마차를 휘감는다

보라

젊음은 넘쳐나는 생명으로 용솟음치고

오솔길은 긴 미래를 향하여 굽어 있다

아무도 모른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길의 끝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아직 없다

두려워 말라

젊은이여

그 길은 너의 것이다

비온 뒤의 풋풋한 숲속에서

새들은 미지의 울음을 울고

은빛 순수함으로 달리는

이 아침은 아름답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절망에 찬 울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가누지 못하는 연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일상이 돼버린 불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병을 똑같이 앓으시는
당신을 사무치게 사랑합니다
 

 

* 속도

속도를 늦추었다

세상이 넓어졌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세상이 더 넓어졌다

아예 서 버렸다

세상이 환해졌다 *

 

* 홀로 가는   

빈 들판에 홀로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동행도 친구도 있었지만

끝내는 홀로 되어
먼 길을 갔습니다

 

어디로 그가 가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따금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아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홀로였기에

어느 날 들판에 그가 보이지 않았을 때도
사람들은 그가 홀로 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없어도 변하지 않는 세상

 

모두가 홀로였습니다 

* 유자효시집[아쉬움에 대하여]-책만드는집

 

* 가을의 노래

잃을 줄 알게 하소서 
가짐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잃음인 것을 

 
이 가을 뚝뚝 지는 낙과의 지혜로
은혜로이 베푸소서 

 
떠날 줄 알게 하소서 
머무름보다 더 빛나는 것이 떠남인 것을 

 
이 저문 들녁 철새들이 남겨둔 보금자리가
약속의 훈장이 되게 하소서 
 

* 사람을 찾소   

니 지끔 어데 있노

어릴 적부터 우예 아심찬타 캤더마는

내가 너그 집에 갔더이

니 식구는 흔적도 없고

집은 다 뿌아졌더라

그기 인자 니 집이기는 하다마는

내 한테는 외갓집 아이가

외할배랑 할매랑 외삼춘이랑

내 어릴적 온갖 추억이 다 있는 집 아이가

그걸 니가 팔아뿌리 ㅆ다카이

그라고 일자 소식도 없으이

니 와이라노

집은 없어져도

사람이 더 크제

새끼들은 인자 다 성가시키 ㅆ나

그 이뿌던 제수씨랑

니 지끔 어데 있노

이 불쌍한 놈아

숨는기 다가 아이라카이

인자 제발 소식 좀 도고

  

* 세한도

뼈가 시리다
넋도 벗어나지 못하는
고도의 위리안치
찾는 사람 없으니 고여 있고
흐르지 않는 절대 고독의 시간
원수 같은 사람이 그립다
누굴 미워라도 해야 살겠다
무얼 찾아 냈는지
까마귀 한 쌍이 진종일 울어
금부도사 행차가 당도할지 모르겠다
삶은 어차피
한바탕 꿈이라고 치부해도
귓가에 스치는 금관조복의 쓸림 소리
아내의 보드라운 살결 내음새
아이들의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끝내 잊히지 않는 지독한 형벌
무슨 겨울이 눈도 없는가
내일 없는 적소에
무릎 꿇고 앉으니
아직도 버리지 못했구나
질긴 목숨의 끈
소나무는 추위에 더욱 푸르니
붓을 들어 허망한 꿈을 그린다
* 제17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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