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 이준관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꽃밭이 내 집이었지.
내가 강아지처럼 가앙가앙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마당이 내 집이었지.
내가 송아지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녔을 때
푸른 들판이 내 집이었지.
내가 잠자리처럼 은빛 날개를 가졌을 때
파란 하늘이 내 집이었지.
내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내 집은 많았지.
나를 키워 준 집은 차암 많았지. *
* 길을 가다
길을 가다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다가가 그 곁에 가만히 서 보고 싶다.
잎들이 다 지고 하늘이 하나
빈 가지 끝에 걸려 떨고 있는
그런 가을날.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내 어깨와
아기새의 그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든 걸어 보고 싶다.
걸어 보고 싶다. *
* 별 하나
별을 보았다.
깊은 밤
혼자
바라보는 별 하나.
저 별은
하늘 아이들이
사는 집의
쬐그만
초인종
문득
가만히
누르고 싶었다. *
* 추운 날
추운 날 혼자서
대문 앞에 서 있으면요.
지나가는 아저씨가
ㅡ엄마를 기다리니? 발 시리겠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ㅡ원, 저런. 감기 걸리겠다. 집에 들어가거라.
지나가는 강아지가
ㅡ야단맞고 쫓겨났군, 안됐다. 컹컹.
대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내 마음
알지도 못하고.....
팽, 팽, 팽, 돌고 싶은 팽이가
내 주머니 속에서
친구를 동동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 가을 떡갈나무숲
떡갈나무숲을 걷는다. 떡갈나무 잎은 떨어져
너구리나 오소리의 따뜻한 털이 되었다. 아니면
쐐기집이거나. 지난 여름 풀 아래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벌레들의 알의 집이 되었다
이 숲에 그득했던 풍뎅이들의 婚禮
그 눈부신 날개짓소리 들릴 듯한데
텃새만 남아
山 아래 콩밭에 뿌려둔 노래를 쪼아
아름다운 목청 밑에 갈무리한다
나는 떡갈나무잎에서 노루 발자국을 찾아본다
그러나 벌써 노루는 더 깊은 골짜기를 찾아
겨울에도 얼지 않는 파릇한 산울림이 떠내려오는
골짜기를 찾아 떠나갔다
나는 등걸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이 깊이 숨을 들이켜
나를 들이마신다. 나는 가볍게, 오늘 밤엔
이 떡갈나무숲을 온통 차지해 버리는 별이 될 것 같다
떡갈나무숲에 남아 있는 열매 하나
어느 山짐승이 혀로 핥아보다가, 뒤에 오는
제 새끼를 위해 남겨 놓았을까? 그 순한 山짐승의
젖꼭지처럼 까맣다
나는 떡갈나무에게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떡갈나무는 슬픔으로 부은 내 발등에
잎을 떨군다. 내 마지막 손이야, 뺨에 대 봐
조금 따뜻해질 거야, 잎을 떨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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