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마지막 눈이 내릴 때 - 문충성

효림♡ 2011. 2. 14. 08:38

* 마지막 눈이 내릴 때 - 문충성   

첫눈이 내릴 때 연인들은
만날 약속한다 공원에서
카페에서 서점에서 뮤직 홀에서
인생은 연극이니 극장 앞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더러는
헤어지고 가볍게 그래
마지막 눈이 내릴 때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허연 머리칼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 눈송이
눈송이는 떨어질까
차가운 손 마주 잡고 눈물 글썽이며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말없이
눈 내리는 공동묘지 근처
아니면 인생은 연극이니 극장 앞에서
아니면 이젠 없어진 뮤직 홀에 앉아
나직이 드뷔시나 들으며
마지막 눈 소리나 들으며 *

* 문충성시집[허공]-문학과지성사

 

* 나도 나비넥타이를 맬까 

숨을 쉴 수 없다

목이 죄어온다

하루 한 번씩 아침마다

목에 풀칠하러

목에 맨다 목매는 줄

남들은 컬러가 멋있다고

누가 고른 거냐고

은근히 치켜세우지만

참으로 목 죄어 죽을 것 같다

김동길 교수는 나비넥타이를 맨다

얼마나 목이 자유로울까

개줄 풀고 나도

나비넥타이를 맬까 그럼

나비처럼 자유로울까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나도

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당당히

한 마리 나비가 될 수 있을까 하늘하늘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을까

몰라! *

 

* 濟州바다 1

누이야, 원래 싸움터였다

바다가 어둠을 여는 줄로 너는 알았지?

바다가 빛을 켜는 줄로 알고 있었지?

아니다, 처음 어둠이 바다를 열었다 빛이

바다를 열었지, 싸움이었다

어둠이 자그만 빛들을 몰아내면 저 하늘 끝에서 힘찬 빛들이 휘몰아와 어둠을 밀어내는

괴로워 울었다 바다는

괴로움을 삭이면서 끝남이 없는 싸움을 울부짖어 왔다

 

누이야, 어머니가 한 방울 눈물 속에 바다를 키우는 뜻을 아느냐, 바늘귀에 실을 꿰시는

한반도의 슬픔을, 바늘 구멍으로

내다보면 땀 냄새로 열리는 세상

어머니 눈동자를 찬찬히 올려다보라

그곳에도 바다가 있어 바다를 키우는 뜻이 있어

어둠과 빛이 있어 바다 속

그 뜻의 언저리에 다가갔을 때 밀려갔다

밀려오는 일상의 모습이며 어머니가 짜고 있는 하늘을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 바다를 알 수 없다

누이야, 바람 부는 날 바다로 나가서 5월 보리 이랑

일렁이는 바다를 보라 텀벙텀벙

너와 나의 알몸뚱이 유년이 헤엄치는

바다를 보라, 겨울날

초가 지붕을 넘어 하늬바람 속 까옥까옥

까마귀 등을 타고 제주의

겨울을 빚는 파도 소리를 보라

파도 소리가 열어 놓는 하늘 밖의 하늘을 보라, 누이야 *

 

* 꽃 노래   

처음 너는 자그마한 눈짓이었네 나풀나풀

이른 봄 햇살 풀리는 물 아지랑이

그 눈짓 네 눈 속에서 자라나

보랏빛 색깔 고르고 보랏빛 향기 고르고 무심무심

불어오는 바람에 한 잎 두 잎 슬픔의 그림자 지우곤 했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때론 너는 허무였네 그러나

존재의 어두운 계단 뚜벅뚜벅

걸어다니며 살아 있음의 고통

짖어대며 끊임없이

피멍 드는 혼 깊숙히

파고들어 나날이

온통 뿌리채 나를 뒤흔들어놓았네

50년이 걸렸네 바보같이

그것이 그리움인 줄 아는데

안팎으론  눈보라치는데 *

* 문충성시집[바닷가에서 보낸 한 철]-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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