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새싹 - 공광규

효림♡ 2011. 3. 15. 10:50

* 새싹 - 공광규 
겨울을 견딘 씨앗이
한 줌 햇볕을 빌려서 눈을 떴다
아주 작고 시시한 시작


병아리가 밟고 지나도 뭉개질 것 같은
입김에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도대체 훗날을 기다려
꽃이나 열매를 볼 것 같지 않은


이름이 뭔지도 모르겠고
어떤 꽃이 필지 짐작도 가지 않는
아주 약하고 부드러운 시작 *

 

* 수종사 풍경 

양수강이 봄물을 퍼올려
온 산이 파랗게 출렁일 때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소리 *

 

* 소주병
술병은 잔에다
자신을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 별국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 겨울 산수유 열매 

콩새 부부가
산수유나무 가지에 양말을 벗고 앉아서
빨간 열매를 찢어 먹고 있다
발이 시린지 자주 가지를 옮겨다닌다

 

나뭇가지 하나를
가는 발 네 개가 꼭
붙잡을 때도 좋아 보이지만
열매 하나를 놓고 같이 찢을 때가
가장 보기에 좋다

 

하늘도 보기에 좋은지
흰 눈을 따뜻하게 뿌려주고
산수유나무 가지도
가는 몸을 흔들어 인사한다

 

잠시 콩새 부부는 가지를 떠나고
그 자리에 흰 눈이
가는 가지를 꼭 붙잡고 앉는다

 

콩새 부부를 기다리느라
가슴이 뜨거워진 산수유나무 열매는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

 

* 공광규시집[소주병]-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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