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푸른 나무 1~10 - 김용택

효림♡ 2011. 4. 13. 08:41

* 푸른 나무 - 김용택   

나도 너 같은 봄을 갖고 싶다

어둔 땅으로 뿌리를 뻗어내리며

어둔 하늘로는 하늘 깊이 별을 부른다 너는

나도 너의 새 이파리 같은 시를 쓰고 싶다

큰 몸과 수 많은 가지와 이파리들이

세상의 어느 곳으로도 다 뻗어가

너를 이루며 완성되는 찬란하고 눈부신 봄

나도 너같이 푸르른 시인이 되어

가난한 우리나라 봄길을 나서고 싶다 *

* 김용택시집[그 여자네 집]-창비

 

* 푸른 나무 1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 싶고

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

왜 이렇게 나는

그대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지

생각에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고

암만 그대 떠올려도

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 아래. *

* 김용택시집[참 좋은 당신]-시와시학사

 

* 푸른 나무 2 -소쩍새 우는 사연 

너를 부르러

캄캄한 저 산들을 넘어

다 버리고 내가 왔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그리운 너의 이름을 부르러

어둔 들판 바람을 건너

이렇게 내가 왔다

이제는 목놓아 불러도

없는 사람아

하얀 찔레꽃 꽃잎만

봄바람에 날리며

그리운 네 모습으로 어른거리는

미칠 것같이 푸르러지는

이 푸른 나뭇잎 속에

밤새워 피를 토하며

내가 운다. *

* 김용택시집[참 좋은 당신]-시와시학사

 

* 푸른 나무 3

나무야 푸른 나무야
나는 날마다
너의 그늘 아래를 두 번씩 지난다
해가 뜰 때 한 번
그 해가 질 때 한 번

걷다가 더울 때 나는 너의 뿌리에 앉아
너의 서늘한 피로 땀이 식고
눈보라칠 때 네 몸에
내 몸을 다 숨기고
네 더운 피로 내 몸을 덥히며
눈보라를 피했다
나무야
잎 하나 없는 잔가지 그림자만
맨땅에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내겐 푸르른 나무야
내가 서러울 때
나도 너처럼 찬바람 가득한
빈 들판으로 다리를 뻗고
달이 구름 속에 들 때 울었다
목놓아 운 적도 있었단다 나무야
푸른 나무야
우리 마을이 네게서 시작되고
네게서 끝나듯이
내 삶의 기쁨도
네게서 시작되고
네게서 이루어졌다

오늘은 나와 함께 맘껏 푸르른 나무야 *

 

* 푸른 나무 4  

우산 없이 학교에 갔다 오다

소낙비 만난 여름날

네 그늘로 뛰어 들어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서서

비 피할 때

저 꼭대기 푸른 잎사귀에서

제일 아래 잎까지

후둑후둑 떨어지는 큰 물방울들을 맞으며
나는 왠지 서러웠다

뿌연 빗줄기

적막한 들판

오도 가도 못하고 서서 바라보는 먼 산

느닷없는 저 소낙비

 

나는 혼자

외로움에

나는 혼자 슬픔에

나는 혼자

까닭없는 서러움에 복받쳤다

외로웠다

 

네 푸른 몸 아래 혼자 서서
그 수많은 가지와
수많은 잎사귀로
나를 달래주어도
나는 달래지지 않는
그 무엇을, 서러움을 그때 얻었다
그랬었다 나무야
오늘은 나도 없이
너 홀로 들판 가득 비 맞는
푸르른 나무야

 

* 푸른 나무 5

이제 너는 아무리 좋은
달밤에도 혼자 서 있다
사랑은 떠나고
달이 찾아와 달빛을 뿌리고
캄캄할 때 별들이 내려와 열리고
소쩍새가 날아와 울지만
붓꽃을 꺾어 들고, 들국을 꺾어 들고
네 그늘 아래로
발소리를 죽이며 숨죽여 그림자를 숨기던
사랑은 이제 없다
네 큰 몸에 기대어 몸을 숨기고
첫 입맞춤을 하던 사랑은 이제 없다
누가 이제 네 아래 누워
긴 사랑을 약속하랴
들판 가득 환한 달빛이 쏟아지고
하얗게 열리던 길들은 적막하다
나무야
나도 사랑했던 나의 사람을
네 그늘 아래로 끌어들였었다
달빛 새어들어 황홀하게 빛나던
그 수많은 이파리들의 수런거림을 들을
그런 눈부신
사랑은 이제 아무데도 없다
이 들판 가득했던
사랑과 이별을 다 알고
그 서러움까지 기대주고 감싸주던 나무야

 

* 푸른 나무 6 

너는 언제나 홀로 서 있다
캄캄한 여름밤이나
뙤약볕 내려쬐는 여름 한낮이나
너는 이제 홀로 아득히 서 있다
네 그늘 아래 들어 논물을 보며
쉴 사람들은 없고
매미를 잡으러 너를 오를 아이들은 한 명도 없다

서너 동네 사람들이
네 그늘이 미어터지게 가득 모여들어
못밥을 먹곤 했었다
저 작은 들판 모내기가 다 끝나고
김매기가 다 끝나고
벼베기가 다 끝날 때까지
농부들은 네 그늘 아래 모여 쉬며 밥 먹고
네 그늘 아래 누워 낮잠 자고
밤이슬을 피하며 삽자루를 베고 누워
논물을 지키곤 했다
이 논 저 논 논물을 대며 싸우며 함께 늙어가던
사람들은 떠나고 죽어가고
남은 사람들도 이제 쓸쓸한 네 그늘 아래
들르지 않고 지나만 간다

네 그늘 가득
못밥을 먹는 모습들이
그 사람들이 지금도 네 그늘 아래 살아날 것만 같다
김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쌀 반 보리 반 반식기 고봉밥에
푸른 가닥김치, 생갈치 지진 것, 콩자반, 하지감자국
무엇이든 배가 터지게 먹고
네 그늘 아래 드러누워 보던 너의 그 푸른 이파리와
소낙비처럼 울어대던 매미소리와
달디달고 짧은 잠에서 깨어나던 그 여름 한낮의
눈부시던 들판의 햇빛
아, 꿈결처럼 들리던 모내던 소리도 이제 사라졌다
무엇이 남았느냐
이제 너는 언제나 홀로 서서
들판에 묻힌 옛 이야기를 쓸쓸히 더듬는다
너의 그 수많은 가지와 이파리로
*


* 푸른 나무 7   
오늘도 집에 가다
나는 네 뿌리에 앉아
서늘한 네 몸에
더운 내 몸을 기댄다
토끼풀꽃 애기똥풀꽃이 지더니
들판은 푸르고
엉겅퀴꽃 망초꽃이 피었구나
좋다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앉아
저 꽃 저 들을 보니 오늘은
참 좋다
이 세상을 살아오다
누구나 한번쯤
인생의 허무를 느낄 때가 있었듯이
내 청춘도 까닭없이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냥 외로웠다
이유 없이 슬펐다
까닭없이 죽고 싶었다
그러던
오늘 같은 어느날
텅 빈 네 그늘 아래 들어
서늘한 네 몸에
더운 내 몸을 기댔다
아, 서늘하게 식어오던 내 청춘의 모서리에 풀꽃이
피고
눈 들어 너의 그 수많은 잎들을 나는 보았다
온몸에 바람이 불고
살아보라 살아보라 살아보라
나뭇잎들이 수없이 흔들렸다

살고 싶었다
지금도 피는 저 엉겅퀴와 망초꽃을
처음 보던 날이었다
오늘도 나는 혼자 집에 가다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네 뿌리에 앉는다
이 세상 어느 끝으로 뻗어
이 세상 어느 끝에 닿아 있을 것만 같은
네 가지 가지에 눈을 주고
이 세상 어둠속을 하얗게 뻗어
어둠의 끝에 가 닿을 것만 같은
네 뿌리에 앉아
나는 내 눈과 내 몸을 식힌다

 

* 푸른 나무 8 -집, 나라, 그리고 시  

길가에 홀로 서 있는

너는 한 편의 시다

네 몸에서는 달이 솟고

소쩍새가 날아와

밤새워 운다

마을과 마을 중간

작은 들 가에 홀로 서 있는

네 푸른 가지는 논밭에 가 닿아 있고

네 아래로

그늘과 빛이 찾아들어

온갖 풀꽃들이

햇빛으로 그늘로 핀다

지금 눈감아도 휜히 떠오르는

엉겅퀴꽃 찔레꽃 붓꽃 달맞이꽃

빨간 산딸기 노란 마타리 솜다리

희디흰 망초꽃 희고 노란 들국화

밥티 입에 문 며느리밥풀꽃

너의 수많은 가지 가지 잎잎에는

온갖 벌레들이 또 그렇게

찾아와 살림을 차린다

너는

집이다

나라다 시다

 

* 푸른 나무 9

바삐 흐르는 저문 물 보면

괜히 가슴 두근거리며

하던 일 서둘러지고

갑자기 그대가 더 보고 싶어집니다

눈길 끝으로 멀리 물을 따라가보면

나는 물 따르지 못하고

저기 가는 먼 물 끝만 봅니다

 

바삐바삐 흐르는 저문 물 보면

가을이 깊어지고 세월도 깊어지는지

나는 압니다

오늘도 내 그리움 다 실은

물소리 다 그대에게 갑니다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며

이 푸른 잎 다 늘리고 다 키웠습니다 *

 

* 푸른 나무 10 -푸른 똥  
저 푸르른 잎 보면

푸른 똥이 생각나는구나

망중 무렵 모든 곡식 다 바닥나고

해는 길고 보리 모가지는

왜 그리 더디나 나오는지

보리 모가지 기다리며 눈이 빠지다

동 벤 보리 목 뚝뚝 따다

솥에다 푹푹 찌고 볶으면

파짝파짝 마른단다

그걸 도구통에 콩콩 찧으면

보릿잎 보릿대 패지 않은 보리가

한꺼번에 찧어졌단다

그걸 체에 탁탁 치면

푸른 가루가 나온단다

그걸로 죽을 쑤면

색깔이 포로소롬하고

맛이 꼬소롬하다

그 죽을 먹고 똥을 싸면

푸른 똥이 나온단다

저 새 잎 푸른 나뭇잎같이

푸른 똥이

얘야

저 푸른 나무 새 잎 보니

푸른 똥이 다 생각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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