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세한도 - 김용택

효림♡ 2011. 3. 22. 17:09

* 세한도 - 김용택

 

 방학이어서 시골집에 혼자 와서 혼자 뒹글뒹글 논다. 

 아침밥 먹고 조금 있으면 점심밥 먹고 조금 있으면 저

녁밥 먹는다. 날이 조금 훤해지면 서리가 하얗게 깔린

아침 강변 길을 존나게 달려도 본다. 발길에 채여 바삭

바삭 구부러지는 언 지푸라기들 소리, 서리가 발등으로

톡톡 튀어오른다. 내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헉헉 풍겨

나오고, 귀싸대기가 열나게 시리다. 이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허리를 꺾인 풀잎들은 강을 향해 서 있고, 들판

의 논들을 다 뜯어고쳐, 길이란 길은 다 빤듯하게 그어

버렸다. 논두렁은 없고 길뿐이다. 우리들은 세상을 얼마

나 더 뜯어고쳐야 평안을 얻을까. 고향산천을 막무가내

로 뜯어고치는 건설의 포클레인 소리, 여기저기 엄청나

게 파뒤집어 쌓아놓은 흙더미, 아, 아 하루라도 좋다 

건설 없는 평화로움 속을 나는 거닐고 싶다. 정말 우린

왜 사는가? 뜯어고쳐야 할 세상을 두고 사람들은 강과

산을 뜯어고친다.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아침밥을 차

려놓고 기다린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 와서 같이 밥 먹

으니 좋으신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아침밥을 먹으면서

낮에는 뭘 먹을까를 묻는다. 그 말끝에 꼭 너그 각시가

혀준 것이 더 맛있쟈 라고 물으신다. 나는, 시대적인 사

명을 다해버린 낡은 정치인들처럼 속 두고 말한다. 아니

에요 어머니. 아침밥을 먹고 어머니는 새로 지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좋은 빨간 벽돌 슬래브집 회관으로 놀러

나가신다. 회관에는 완전히 혼숙이다. 회관 방에는 앉아

있기가 힘드신 동네 청춘남녀, 아니 노인들이 모두 이리

저리 누워서 하루를 보낸다. 어느날 민해가 그 방에 들

어갔다가 혼비백산 도망나와 하는 말이 "아빠, 내가 문

열고 들어서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누워서 고개만

일제히 내 쪽으로 확 쳐드는 거 있지, 무섭드랑게, 핵

핵." 하며 숨을 몰아쉰 적도 있다. 한참 있으면 어머니

는 집에 오셔서 내 방에다가 사과, 귤을 넣어주시며 "하

따 겁나게도 어지러놓고 있다인." 하시며 또 팔짱 끼고

회관으로 가신다.

 

 내 방은 참 환하다.

 

 밤이면 마을 앞 가로등 불빛에, 떠오르는 달빛에 마당

의 나뭇가지들이 감정적으로 휘두른 회초리자국처럼 창

호지 문에 어지럽혀져 있다. 하루종일 방이 훤해서 뭐든

다 보일 것 같지만 실은 뭐든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내

현실이다. 현실은 엄연한데, 나는 내 마음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더 많은 일들을 지금 하고 있다. 책을

낸다는 일들이 생각해보면 무지 시들하고 무지 부질없

다고,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방은 문이 다섯 짝이나

되는데 모두 창호지로 발라져 있다. 내가 평생을 산 방

이다. 나는 이 방에서 자랐다. 나는 이 방에서 겨울 시

린 물소리를 다 듣고, 달 밝은 봄밤 소쩍새 소리를 나

혼자 다 들으며 앞산에서 애애애앵 애앵 우지끈 뚝딱 기

계톱날에 넘어지는 저 파란 소나무 같은 청춘을 보냈다.

아아 그 길고 긴 세월의 하루하루여! 두 눈 똑바로 뜨고

자기를 바라보며 겁도 없이 강물로 뛰어들던 겨울날의

눈송이들이여! 내가 어릴 때 저 소나무 사이로 깡충깡

충 뛰어가던 토끼들이 보였다. 외로움이 꿀처럼 달던 때

였다. 외로움이 노란 소태나무 속처럼 쓸 때였다. 나의

분노는 강물을 차고 뛰어오르는 저문 날의 물고기들처

럼 싱싱했다. 한없이 쓰고 달던 겨울날의 절망과 외로움

들이 봄 산에서 산꽃이 될 때였다. 방바닥에 등을 딱 대

고 빤듯하게 누워 있는데 차에다가 앰프 장치를 한 타이

탄 트럭들이 하루 종일 작은 마을을 애물단지 쥐 드나들

듯 들락거린다.

   "털 다 뜯은 닭 사세요."

   "개나 염소 파세요."

   "쉬나리고추* 파세요."

   "계란이나 달걀 있어요."

 어떤 할머니가 차 바로 옆을 지나가는지 낮은 확성기

소리가 들린다.

   "튀밥 튀세요 할머니. 안 튄다고요?" 모두들 동네 한

바퀴 잘 돌고 그들은 나간다.

 애애앵-애애앵- 날카롭게 돌던 기계톱날 소리가 잠시

그칠 때마다 산등성이에서 소나무들이 동네 쪽으로 어?

어? 파랗게 넘어진다. 넘어져 토막토막 잘려진 소나무

들을 포크레인이 사정없이 아무렇게나 컥컥 찍어 번쩍

번쩍 들어올린다. 포크레인은 어떻게, 저렇게, 높은, 저

런, 산꼭대기, 험한 비탈을, 다 올라갔을까? 너그들 정

말 그렇게 아무 곳이나 올라가 파고, 뒤집고, 자르고,

산을 부술래 이 염병 삼년에 땀도 못 나고 뒈질 놈들아.

(아아, 나는 정말 쌍욕을 하고 싶다.) 포크레인이 번쩍

일 때마다 나무토막들이 뿔껑 들려져서 반 바퀴 휙 돌아

비탈진 땅에 내동댕이쳐진다. 저 높은 산에서 반 바퀴

돌다가 내팽개쳐지면 얼마나 어지러울까. 검은 염소 몇

마리가 노란 햇볕을 뚫고 낮은 시멘트 다리를 건너 마을

쪽으로 느시렁느시렁 걸어온다. 문재란 놈이 대낮부터

고무망태가 되어 전화를 걸어왔다. 형, 이, 씨, 시는 짧

은 것이 시여. 뭣 같은 소리 마라 임마 시는 내 맘대로

쓰는 것이 시여 임마. 형, 이, 씨, 형은 조컸따 집에 있

응게. 이, 씨, 근디 형, 형이 나 좋아한 것보다, 내가 형

을 더 좋아하는 거 알아. 눈 오면 한번 가께. 어머니가

회관에서 돌아오시며 "용태가아, 또 밥 묵자, 밥 묵어.

세한에는 날씨가 세한 같아야 허는디 큰일이다 큰일."

 

 어머니는 큰일난 세한도 한폭을 그리며 오신다

 

 "근디 누구하고 전화를 허간디 그렇게 욕을 허면서 웃

냐?"  "문재요."  "뭐? 문제? 어디서 또 먼 문제 터졌

냐?" 마루에 서서 보면 강가에는 바위투성이 산을 아무

렇게나 굴러내려온, 껍질이 너덜너덜한 상처투성이의

소나무들이 서리를 허옇게 쓰고 새파랗게 얼어 꼼짝없

이 누워 있다가 큰 차에 실려 강바람을 뚫고 어디론가

마을을 떠나간다. 구태의연들이 구케의 문을 때려부셔

분 바람에 진짜 문은 안 열고, 어먼 문고리를 잡고 어먼

일에 열내고 있다는 참으로 쩨쩨하고 쪼잔시런 소식이

저 강물을 따라 흘러왔다는 소식이 금방 들려왔다고 어

떤 소식이 전해와따고 전해왔다. 부도덕도 집단으로 부

도덕하면 도덕이 되는 걸까. 더러워져도 여럿이 함께 더

러워지면 사회정의적인 막강한 힘이 되는 걸까. 망가져

도 집단으로 망가지면 윤리사회도덕적 힘이 솟는 걸까.

오! 너도나도 뭉쳐서 가자. 5천년 동안 썩어온 권력을

위해. 저 구케의언들의 심장은 무슨 심장일까. 저들의

얼굴에 깐 철판의 두께는 얼마나 두꺼울까. 저 뻔뻔스러

운, 저 넌더리나는, 저 지겨운, 아아, 모두 구케의언이

되어가는 '반정치적인' 사람들. 싱건지. 총각김치, 썰지

않는 벌건 배추김치로 밥을 맛나게 퍼먹고 있는데 어머

니는 또 "저녁에는 뭘 먹을래. 동태국을 끓일까? 찰밥

을 한번 혀볼까? 아니면 니 각시가 사다주고 간 간고등

어를 꾸어볼까." 그러시더니, "오늘 날씨가 참 푹허다

푹혀." 팔짱을 끼고 앞산 포크레인을 올려다보시며 "참,

존 세상이다. 참말로 무선 세상이다. 저 뽁대기까장 저

큰 '포크라인'이 올라가불다니."

 

 어머니는 무서운 세한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신다.

 

 나는 어디 놀러갈 데가 한군데도 없다. 어디를 좀 가

볼까 하고 마루에 서면 어딘가 꽉 막히는 막막함으로 그

냥 도로 방에 들어오고 만다. 방안이 자유다. 나는 내

방에 들어와 시를 읽다가, 생각해보니 하나도 재미없어

서 내팽개쳐두고 오늘 새로 온 잡지를 읽으며 부른 배를

꺼친다. 인생이 불쌍하니 변소 바깥에서 힘주지 말라.

잡지사 몇군데서 전화 오고, 나도 몇군데 전화하고, 나

는 하루 종일 밥 먹고 밥 꺼치는 일이 일처럼 매우 즐겁

고도 한량없이 기쁘고도 구주 오신 것만큼이나 기쁘다.

어떤 책도 끝까지 다 읽은 책이 없어서 방은 더 어지러

지고, 무지, 그리고 또 존나게 심심해서 창호지 환한 문

을 바라보고 있으면 스르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삼산하

게 잠이 온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무너

져서 잠이 들까 말까 기분이 째지게 황홀할 때, 깜박 꺼

지려 할 때, 꼭 전화가 온다. "에이 누구데야 씨-"  "여

보 나야. 뭣 해. 밥 묵었어. 뭣이랑 묵었어. 어머님은?

나 안 보고 싶어. 근데 여보 밤이면 나 잠이 안 온단 말

이야. [박물관 옆 동물원] 보게 빨리 와. 끊어 안녕." 나

는 시계도 안 보고, 문을 뿌셔부러서 나라가 시끄럽다는

뉴스도 인자 안 보고, 신문을 안 봐도 하루해가 제 길로

잘 저물어진다는 게 여간 재미진 게 아니어서, 나는 무

지무지 조코 편타. 기다릴 것도, 기대도 없다. 내게도

희망 없는 날이 있음에 나는 복되도다. 해는 늘 앞산에

서 떴다가 강을 건너와서는 우리집 뒷산으로 안전하고

도, 참으로 한가롭게 진다. 해 뜨면 밥 먹고, 해 지면 밥

또 먹고, 어두워지면 불 켜고, 잠 오면 불 끄고 쿨쿨 잔

다. 

 창호지 문에 어둠이 내리면 나는 일어나기 싫은 몸을

억지로 달래 일어나 전등에 늘어진 실을 잡아땡겨 불을

켠다. 밤이 깊으면 낮의 모든 소리들이 다 죽어불고 물

소리만 크게 살아난다. 캄캄해지면 산은 돌아다니고, 물

은 저녁 내내 내 머리맡을 흘러간다. 어머니는 저녁밥

드시고도 회관에 가신다. 회관에 가시기 전에 스텐으로

된 뚜껑 있는 요강을 마루에 놓으며 꼭 "너는 안 심심허

냐? 요강 갔다 놨다 인-" 하신다. 진짜 나는 심심하다.

심심하다는 말이 이렇게 실감나기는 처음이다.

 

 어머니는 심심한 세한도 곁을 무심히 지나신다.

 

 나는 요강에다가 오줌을 잘 안 싸고 어둠을 헤치고 나

아가 논배미에다가 직접 '시비'하지만 요강에다가 오줌

을 싸면 요강이 울린다. 내가 제일 처음 오줌을 싸면 더

근다. 손님이, 그것도 여자 손님이 오면 아무리 추워도

논배미에 가서 오줌을 싸야 한다. 어쩔 때 어머니는 회

관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오시기도 하고, 어쩔 때는 집에

서 주무시다가 새벽 4시에 회관에 가시기도 한다. 내가

잠에서 일찍 깨어 어머니 방에 가서 이불 속에 누우면

어머니는 온갖 동네 소식을 다 풀어놓으신다. 누구를 흉

보기 시작하면 끝도 갓도 없이 그 사람 흉을 다 끄집어

내어 일일이 낱낱이 아주 세세히, 지난날 어머니에게 서

운했던 일까지, 다 흉보고, 불쌍하게 혼자 사는 사람 이

야기가 나오면 또 끝까지 근다. 그런데 흉을 보았던 그

사람이나 불쌍하다고 한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이 그 사람

이다. 어머니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인 이야기를 아주 생

생하게, 어제의 일처럼 아주 리얼하게, 아주 생동감이

넘치게, 아주 감동적으로 잘도 하신다. 어떤 대목에 가

서는, 새삼스럽게 발끈 화를 내시는 어머니 얼굴을 내가

가만히 건너다보고 있으면 어머니도 스스로 우스운지

날 보고 웃는다. 어머니의 이야길 한참 듣고 있으면 나

는 옛날 사람들이 많이 살 때의 아침 징검다리를 생각한

다. 사람들이 집짐승들을 데리고 일을 나가느라 물결이

반짝이는 아침 징검다리께는 늘 장정들과 건강한 여인

들이 큰 말소리들이 싱그럽고도 눈부시게 붐비었었다.

그 징검다리 물소리는 밤이 깊으면 점점 커지다가 새벽

에는 잦아지다가 아침에 깨어나 금방 죽어버린다. 아까

도 말했지만, 밤이면 어찌나 달이 밝던지 내 방 창호지

문은 밤 내내 아침같이 뿌연해서 저녁 내내 나는 계속

속는다. 자다 일어나 오줌 싸러 나가보면 정말이지 세상

은 열받게 조용하다. 달빛에 반짝이는 빈 논바닥에 깔린

흰 서리, 어둠을 가득 안은 산, 내 시린 발등, 어디만큼

가버린 달, 언젠가 달이 없을 때 이렇게 오줌 싸러 밖에

나왔는데, 어찌나 별들이 곧 떨어질 듯 초롱거리던지,

나는 내 시린 손이 다 앞으로 나갔다. 손을 내밀면 별들

이 손바닥 가득 떨어져서 꼬물거렸다. 어쩔 때 소변보러

나가서 잠을 잃어버리고 들어와서는 어둠하고 싸우다가

불을 켜고, 앉아서 뭘 해볼까 하지만 이 한밤에 일어나

중요하게 해야 할 만한 일이 내겐 없는 것 같아 '난 참

고독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고통이 확실할 때가 있었

다. 이제 내 손에는 빛을 잃은 식은 별뿐인가? 외로움은

분노가 아니다. 세계를 향한 분노를 잃어버린 시인은 시

인이 아니다. 아, 아, 이 새벽 어둠속을 흐르는 이 뜨거

운 내 불덩어리들아 내 몸을 뚫어다오. 저 흐르는 강물

속을 미친 듯 떠다니며 부딪쳐 깨지는 차가운 얼음 조각

들아.

 

 굽이굽이 흘러가는 저 겨울 언 강을 들어 나를 후려치

고 싶구나.

 

 우린 벌거벗고 서 있다. 우리의 분노는 시장바닥 기둥

에 걸린 조기대가리 입처럼 공허하다. 춥고 슬프다. 이

세기말의 새벽이여! 신새벽 찬바람 속을 뚫고 가는 물

소리가 내 시린 등어리를 뚫는다. 야, 근디. 너그들, 정

말이지. 어디까장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 넘기고 땅을 파

뒤집고 길을 뜯어고칠래. 그 지랄(그래, 이건 삶이 아니

라 지랄이다)을 언제까지 할 것이냐. 엉! 그 일이 끝이

있을 것 갔냐? 아, 아, 시는 망했다. 애애앵 애애애앵 아

침 햇살에 반짝이며 도는 저 산정의 기계톱날 소리가 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싹둑 자르며 썬득 지나간다. 

 어, 어, 아니, 이거 내 생각의 톱밥이 없자녀? 톱밥

이? 냉랭한 아침 강바람 소리 끝에서 쓰러지는

 

 추운 시절의 저 소나무들, 슬프다. *

 

* 쉬나리고추 = 못 먹는 고추  

 

* 김용택시집[나무]-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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