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산 - 김용택

효림♡ 2010. 7. 28. 08:25

                           

 

산 - 김용택  

하루 해가 떠서
다 지도록
천번 만번이나
당신을 떠났어도
도로 그 자리
나는 하루종일
당신 곁에 꼼짝없이
서 있었습니다 *

 

* 산도 물도  

당신 앞에 서면

산도 물도 꽃도

지워집니다

 

* 산 하나  

저 고운 단풍 보고 있으면

그냥 당신이 그립고 좋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는 이 삶의 청정함과 애련함을

보듬어 안아다가

언제라도 당신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흩어지고 사라질 내 시간들이

당신 생각으로

저 산 단풍처럼

화려하게 살아오르고

고운 산 하나

내 눈 아래 들어섭니다


당신

당신만 생각하면

그냥 당신이 그립고

한없이 세상이 좋아집니다 *

 

* 밤 산 

산들이 저렇게 잠 안 자고

어디를 보며 앉아 있었구나

산들이 저렇게 어둠 속에

잠 안 자고 앉아 어디를 보며

나처럼 속으로 울고 있었구나 *

 

* 먼 산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입니다
산도 꽃 피고 잎 피는
산이 아니라
산국 피고 단풍 물든 산이 아니라
그냥 먼 산입니다
꽃 피는지
단풍 지는지
당신은 잘 모르는
그냥 나는 그대를 향한
그리운 먼 산입니다 *

 

* 앞산을 보며 

이렇게 살다가

나도 죽으리

나 죽으면

저 물처럼 흐르지 않고

저 산에 기대리

눈을 감고 별을 보며

풀잎들을 키우다가

언젠가는 기댐도

흔적도 없이 지워져서

저 산이 되리 *

 

* 큰 산

나날이 푸르러오던
지난 여름처럼
이 가을은
날마다 붉어져갑니다
저 산천은
젊음도 뜨겁더니
끝까지 화려합니다
나도 당신에게 가서 저렇게
황홀하게 물들고 싶어요
소리 없는 사랑으로
소리 없는 몸짓으로 저렇게
붉고 뜨거운 큰 산으로
그대 앞에서
눈부시게 물들며 그려지고 싶어요 *

 

* 산 

강물을 따라 걸을 때 강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거야
너도 나처럼 흘러봐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 곁을 지날 때 억새는 이렇게 말했네
너도 나처럼 이렇게 흔들려봐
인생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연보라색 구절초 곁을 지날 때 구절초꽃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한번 피었다가 지는 꽃이야
너도 나처럼 이렇게 꽃 피워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지날 때 느티나무는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그 자리에서 사는 거야
너도 나처럼 뿌리를 내려봐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아래를 지날 때 구름은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별게 아니야 이렇게 허공을 떠도는 거야
너도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봐

내 평생 산 곁을 지나다녔다네
산은 말이 없네
산은 지금까지 내게 한마디 말이 없었네 *
 

* 김용택시집[그래서 당신]-문학동네 


*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

 

* 저 산 저 물 

산도 한 30년쯤 바라보아야 산이다

물도 한 30년쯤 바라보아야 물이다

내가 누우면 산도 따라 나처럼 눕고

내가 걸어가면 물도 나처럼 흐른다

내가 잠이 들면 산도 자고

내가 깨어나면 물도 깨어난다

 

내가

세상이 적막해서 울면

저 산 저 물도 괴로워서 운다 *

'김용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집으로 간다 - 김용택   (0) 2011.04.07
세한도 - 김용택   (0) 2011.03.22
달콤한 사랑 - 김용택  (0) 2010.06.01
봄비 - 김용택  (0) 2010.02.10
한 잎 - 김용택   (0) 201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