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봄비 - 김용택

효림♡ 2010. 2. 10. 08:07

* 봄비 1 - 김용택  

바람이 붑니다

가는 빗줄기들이 옥색 실처럼 날려오고

나무들이 춤을 춥니다


그대에게

갈까요 말까요

내 맘은 절반이지만

날아 온 가랑비에

내 손은 젖고

내 맘도 벌써 다 젖었답니다

 

* 봄비 2

어제는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고운 봄비가 내리는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막 돋아나는 풀잎 끝에 가 닿는 빗방울들

풀잎들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가만가만

파랗게 자라고

나는 당신의 살결같이 고운 빗줄기 곁을

조용조용 지나다녔습니다

이 세상에 맺힌 것들이 다 풀어지고

이 세상에 메마른 것들이 다 젖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내 마음이 환한 하루였습니다. 어제는 정말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운 당신이 하얀 맨발로

하루종일 지구 위를

가만가만 돌아다니고

내 마음에도 하루 종일 풀잎들이 소리도 없이 자랐답니다. 정말이지


어제는

옥색 실같이 가는 봄비가 하루 종일 가만가만 내린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 봄비

비가 오네요

봄비지요

땅이 젖고

산이 젖고

나무들이 젖고

나는 그대에게 젖습니다

앞강에 물고기들 오르는 소리에

문득 새벽잠이 깨었습니다  

 

* 봄비

내 가슴에 묻혔던 내 모습은
그대 보고 싶은 눈물로 살아나고
그대 모습 보입니다
내 가슴에 메말랐던
더운 피는 그대 생각으로
이제 다시 붉게 흐르고
내 가슴에
길 막혔던 강물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내 눈에 메말랐던
내 눈물이 흘러
내 죽은 살에 씻기며
그대
푸른 모습
언 땅을 뚫고 솟아나는 모습 보입니다

 

* 비  

새벽비 소리에

홀로 깨었습니다

창호지 문이 환하게 밝아져 오는

오랜 시간

그 빛이 좋습니다

어디선가 휘파람새가 울기 시작합니다

봄비는 사방에 떨어지며

그리운 당신 모습을 다 그려내고

온갖 소리들은

온갖 생각을 다 만들어냅니다

온갖 소리 중에서

당신의 모습을 쫓아

뒤척이는데

당신 생각은 끝도 갓도 없이 넓고 깊어져서

당신 생각으로

환히 날이 샙니다

 

* 초봄, 산중일기
오늘은 하루 종일 산중에 봄비입니다
문 열면 그대 가듯 가만가만 가고
문 닫으면 그대 오듯 가만가만 옵니다
문 닫으면 열고 싶고
문 열면 닫고 싶고
그 두 맘이 반반입니다
한 맘이 반을 넘어
앞산 뒷산 산산이 다 초록이 되어버리고
그대가 내 맘 안팎에서 빨리
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내 맘은 지금 비 지나는
물 위 같습니다
자꾸 동그라미가 그대 얼굴로
죽고 삽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서성여도 젖지 않는
산중에 오락가락 봄비였습니다.
*

* 김용택시집[참 좋은 당신]-시와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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