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꽃 시 모음 2

효림♡ 2011. 4. 19. 08:34

* 산유화(山有花) -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 김소월시집[진달래꽃]-미래사

 

* 산도화(山桃花) 1 - 박목월

산은

구강산(九江山)

보라빛 석산(石山)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

*산도화(山桃花)-산 복숭아꽃

*구강산-실제의 강산이 아니라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이상향을 뜻함

*석산-돌산

*버는데-피어나는데

 

* 찔레꽃 - 송기원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어질머리 흔들리는 봄날 저녁이면
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그런 지경에서
꿈결같이 사람 냄새를 맡곤 하였습니다.
한 번 돌고, 두 번 돌고, 또다시 도는
그런 산모롱이 아래 아늑한 곳에서는
개 짖는 소리, 된장국 냄새, 밥 짓는 연기 속에서
마을의 불빛들 하나 둘 밝게 켜지고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갈 길도 돌아설 길도 모두 어둠 속에 묻혀버릴 때
그대 대신에 느닷없는 수천 수만 찔레꽃 송이들
무언(無言), 무언으로 피어올랐습니다.
그렇게 그대 대신에 피어올라서
돌아설 한 가닥 외길 비추어주었습니다. *

* 꽃시그림집[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램덤하우스중앙

 

* 꽃 - 도종환 

아프게 피지 않는 꽃은 없다

모진 겨울 없으면 백매화도 없다

혹독한 눈보라 있어서 산수유꽃도 있는 것이다

사무치고 사무쳐 꽃 한 송이 피는 것이다

봄 사월에도 눈발 쏟아질 때 있고

 

황사와 흐린 빗줄기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순간 순간 치열하지 않으면

꽃다지 좁쌀만한 꽃 송이도 필 수 없는 것이다

한 송이 꽃으로 제가 저를 살리고

제가 저를 살려낸 모습 남에게 기쁨이 되고

서 있는 자리만큼 세상 환하게 바꾸며

꽃 한 송이 피는 것이다

아프지 않고 피는 꽃은 어디에도 없다

 

* 산딸나무, 꽃 핀 아침 - 안도현  

나무가 꽃을 피운다고?

아니다, 허공이 피운다

나무의 몸 속에 꽃이 들어 있었던 게 아니다

나무가 그 꽃을 애써 밀어올렸던 게 아니다

허공이 꽃을 품고 있었다

저것 좀 봐라,

햇볕한테도 아니고

바람한테도 아니고

나무가 허공한테 팔을 벌리고

숨겨둔 꽃 좀 내놓으라고,

내 몸에도 꽃 좀 달아달라고,

팔을 벌리고 애원하는 자세로 나무가

허공을 떠받치고

허공을 우러르며

허공에다 경배하고 있는 것 좀 봐라

때가 되면 나무에 꽃은 핀다고?

아니다, 때가 되어야 허공이

나무에다 꽃을 매달아 주는 것이다

산딸나무야,

몸 안에 꽃을 넣어두지 말아라

너는 인제 아프지 말아라

 

아침까지 몸 안에 술 든

나 혼자 다 아프겠다 *

* 안도현시집[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

 

* 산당화 - 김용택 

화병 아래

산당화 꽃이 떨어져 있네요.

팔 베고 모로 누워 꽃잎을 바라봅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산당화 꽃잎은 다섯 장이네요.

산당화 꽃잎이

다섯 장인 줄

알 때

그때

사랑이네요.

산당화

산당화 꽃이

일곱 뼘 저쪽에 모로 누워

나를 가만히 바라보네요.

가지 말아요

가지 말아요

날 보고, 그가

말하네요. *

 

* 산수국꽃 - 김용택 
아침 저녁으로 다니는 산 아래 강길
오늘도 나 혼자 걸어갑니다

산모롱이를 지나 한참 가면
바람결처럼 누가 내 옷자락을 가만가만 잡는 것도 같고
새벽 물소리처럼 나를 가만가만 부르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 자리를 그냥 지나갑니다

오늘도 그 자리 거기를 지나는데
누군가 또 바람같이 가만가만 내 옷깃을 살며시 잡는 것도 같고
물소리같이 가만가만 부르는 것 같아도
나는 그냥 갑니다
그냥 가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가만히 흔들렸던 것 같은
나무이파리를 바라봅니다
그냥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갑니다
다시 가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가만히 서 있다가
흔들렸던 것 같은 나뭇잎을 가만히 들춰봅니다
아, 찬물이 맑게 갠 옹달샘 위에
산수국꽃 몇송이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나비같이 금방 건드리면
소리없이 날아갈 것 같은
꽃이파리가 이쁘디이쁜
산수국꽃 몇송이가 거기 피어 있었습니다
* 

* 김용택시집[그 여자네 집]-창비

 

* 꽃 앞에서 바지춤을 내리고 묻다 - 복효근  

급한 김에

화단 한구석에 바지춤을 내린다

힘없이 떨어지는 오줌발 앞에

꽃 한 송이 아름답게 웃고 있다

 

꽃은 필시 나무의 성기일시 분명한데

꽃도 내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할까

 

나는 나무의 그것을 꽃이라 부르고

꽃은 나를 좆이라 부른다 *

 

* 백합 -연화리 시편 27 - 곽재구

당신이 고통으로 흔들리는 그 순간마다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당신이 주체할 수 없는 정신의 방황으로

아름다운 긴 머리칼마저 흐트러뜨릴 때

내 마음의 뜨거운 골짜기에서

진실로 순결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어느 날

당신은 나를 떠나겠지요

내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찬란한 바다

모든 파도가 슬픔으로 술렁이는

그날도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

* 꽃시그림집[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램덤하우스중앙

 

* 능소화 -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

* 꽃시그림집[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램덤하우스중앙

 

* 변산 바람꽃 - 이승철 

급하기도 하셔라

누가 그리 재촉했나요,

반겨줄 임도 없고

차가운 눈, 비, 바람 저리 거세거늘

행여,

그 고운 자태 상하시면 어쩌시려고요.

 

살가운 봄바람은 아직,

저만큼 비켜서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어쩌자고 이리 불쑥 오셨는지요,

언 땅 녹여 오시느라

손 시리지 않으셨나요,

잔설 밟고 오시느라

발 시리지 않으셨나요

 

남들은 아직

봄 꿈꾸고 있는 시절

이렇게 서둘러 오셨으니

누가 이름이나 기억하고 불러줄까요.

첫 계절을 열어 고운 모습으로 오신

변산 바람꽃 

 

* 칸나 - 오규원

칸나가 처음 꽃이 핀 날은

신문이 오지 않았다

대신 한 마리 잠자리가 날아와

꽃 위를 맴돌았다

칸나가 꽃대를 더 위로

뽑아올리고 다시

꽃이 핀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음날 오후 소나기가

한동안 퍼부었다 *

 

* 해국, 꽃 편지 - 진란  

잠시 여기 꽃그늘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꽃빛이 너무 좋아도 눈물이 나는 걸까요?

당신을 더듬는 동안 내 손가락은 황홀하여서

어디 먼 곳을 날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어지럽던 동안 바닷물이 밀려오듯

눈물이 짭조름해졌습니다

우리가 자주 머물던 바다를 생각했습니다

그 때 그 어깨에도 해풍이 머물고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갔던 게지요

그 때 그 가슴에도 섬이 되었다가 섬이었다가

섬으로 멀어졌던 게지요

이렇게 좋은 풍경, 이렇게 좋은 시를 만나면

순간 돌부처 되어 숨이 막히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경이 되어버립니다

잠시 여기 꽃그늘에 앉아 편지를 씁니다

한 때 꽃이 되었다가 꽃이었다가 꽃으로 져버린 그대

내년에도 다시 오마던 꽃은 그 꽃이 아닐 것이라고

우리의 기억은 늘 다르게 적히는 편지라고 

* 진란시집[혼자 노는 숲]-나무아래서

 

* 헌화가 - 이홍섭

당신에게 바칠 꽃이 다 떨어지면
여기와 일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밤새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소리 듣다
아침이 오면 절벽 아래로 꽃처럼 피어날지도

당신에게 바칠 꽃이 다 떨어지면
깨끗이 저를 잊어주시길 바랍니다
내 마음 알 때쯤이면 당신도 정처 없이 이곳으로 흘러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

* 오광수엮음[시는 아름답다]-사과나무

 

* 헌화가(獻花歌) - 신라 향가

老獻花歌曰

紫布岩乎邊希 -자포암호변희  

執音乎手毋牛放敎遣 - 집음호수무우방교견

吾肹不喩慚肹伊賜等 - 오힐불유참힐이사등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 화힐절질가헌호리음여

 

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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