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술 시 모음 2

효림♡ 2011. 4. 22. 08:46

* 술 한잔 -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

* 정호승시집[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비

 

* 막걸리 - 천상병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

 

* 술 - 천상병
술 없이는 나의 생을 생각 못한다
이제 막걸리 왕대포집에서
한 잔 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취하게 마셨지만
오십이 된 지금에는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하다

아내는 이 한 잔씩에도 불만이지만
마시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을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 막걸리타령 - 이소리 

몸과 맴이 심들 때는

막걸리 한 사발 이기 보약 아이가

아, 요즈음 젊은 것들이야 먹을 끼 널려 가꼬

막걸리 요놈을 아주 상머슴 부리듯 하지만

내가 대가리 소똥 벗겨지고 난 뒤부턴

막걸리 요놈 한번 배부르게 묵고 싶어

두 눈깔이 막걸리 빛깔처럼 허옇게 뒤집혔다 안카나

막걸리 요놈은 출출할 때 맛이 으뜸 아이가

아, 오죽했으모 막걸리 요놈 쪼매 더 마실라 카다가

바람 난 마누라 보따리 싸는 줄도 몰랐다카이 *

 

* 막걸리 - 이인수

부부싸움 한판 하고

술을 마신다.

비 온 뒤 땅 굳는다지만

싸움은 늘 슬프더라

사람 하나 못 구슬리니

막걸리만 못한 건가

긴 한숨 사발에 담아

한 잔 두 잔 지우는데

술도 못하는 그 사람

무엇으로 달래고 있나 *

 

* 주막(酒幕)에서 - 김용호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集散)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

 

* 술타령 - 신천희(소야스님)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 *

 

* 술통 - 모리야센얀(일본선승)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밑둥이 샐지도 몰라 *

 

* 술 마시는 법 - 김종구 

나는 누구와 술을 마시더라도

그 사람 마음을 마시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의 진실을 따라주고 싶다

나는 그의 투명한 잔이고 싶고

속마음 털어주는 술이고 싶다


안주는 인생의 소금 꽃이면 더욱 좋고

오가는 입김 속에

가끔은 데워진 말로 부딪칠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의 잔 다 받아먹고 싶다

또 그만큼 따라주고 싶다

 

* 소주를 마시며 2 - 박상천

소주가 맛있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사람들이 웃건 말건
나는 소주가 맛있다
저녁을 먹으며 
혼자 소주를 마신다고 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사람들이 웃건 말건
나는 혼자서도 곧잘 소주를 마신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소주가 먼저 생각난다고 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사람들이 웃건 말건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소주를 마셔야 한다 
 
자꾸만 쭈뼛거려져
멋 낸 옷 한 번 입지 못하는 내가
소주에 대해서만은
사람들의 웃음을 잘도 견뎌낸다 
 
하지만 어디 소주만이랴
내가 견뎌야 할 사람들의 웃음이
우리가 서로에게 견뎌야 할 일들이 *

 

* 독작(獨酌) - 박시교

상처 없는 영혼이

세상 어디 있으랴

사람이

그리운 날

아, 미치게

그리운 날

네 생각

더 짙어지라고

혼자서

술마신다 *

 

* 흔들릴 때마다 한 잔 - 감태준 
   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놈은 나다, 접시 위에 차례로 놓이는 날개를 씹으며, 꾼 옆에 꾼이 판 없이 떠도는 마음에 또 한잔,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수없이, 다만 다같이 풀리는 기쁨, 멀리 뒷산에는 문득 나무들이 손 쳐들고 일어서서 단풍을 털고 있다 *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 막걸리 예찬 - 유응교 
양주가 좋다하나 맥주보다 못하고
맥주가 좋다하나 소주만 못하더라.
막걸리 마시고 보니 그 중에 제일일세.

논밭에 일하다가 허리 펴고 둘러앉아
양주를 마실 건가 맥주를 마실 건가
그래도 막걸리 한 잔 천하에 일미일세.

치즈로 양주 들고 멸치로 맥주 들고
특별난 안주 없이 그대로 마시지만
푸짐한 막걸리 안주 세상에 최고일세.

넥타이 고쳐 매고 격식을 갖추면서
점잖게 마주앉아 양주를 마시지만
막걸린 풀어헤치고 마셔야 제격일세.

 

양주를 마실 때는 가식이 드러나고

막걸리 마실 때는 진심이 우러나니

세상에 이 만 한 술이 또 어디 있겠는가. *

 

* 진도홍주 - 김선태

진도홍주를 마시다보면
몸속의 길이 환히 보인다.

간이역을 차례로 들러 느릿느릿
종점에 도착하는 야간완행열차처럼
목구멍-위-작은창자-큰창자-방광으로 내려가는
구불구불한 길이 차례로 들여다 보인다
중간에 대동맥-소동맥-실핏줄로 퍼져나가는
가느다란 샛길들마저 낱낱이 보인다.

진도홍주에 취하다보면
역주행의 길도 환히 보인다.

밭일 마친 진도 아낙들 얼쑤절쑤
흥타령 부르며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듯
방광-큰창자-작은창자-위-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비틀비틀한 길이 절로 들여다 보인다
홍주 속에 녹아들어 있는 진도의 길과 가락
불타는 세방낙조까지 뜨겁게 보인다.

 

* 반성 21 - 김영승

친구들이 나한테 모두 한마디씩 했다. 너는 이제 폐인이라고
규영이가 말했다. 너는 바보가 되었다고
준행이가 말했다. 네 얘기를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현이가 말했다. 넌 다시
할 수 있다고 승기가 말했다.
모두들 한 일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

 

* 술 마시는 남자 - 장석주  

다치기 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술을 마시네
술 취해 목소리는 공허하게 부풀어 오르고
그들은 과장되게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거나
욕을 하네
욕은 마음 빈 곳에 고인 고름,
썩어가는 환부,
보이지 않는 상처 한 군데쯤 가졌을
그들 마음에 따뜻한 위안이었으면 좋겠네.
취해서 누군가를 향해 맹렬히 욕을 하는 그대,
취해서 충분히 인간적인 그대,
그대는 날개없는 천사인가
그들 마음의 갈피에 숨어 있던 죄의 씨앗들
밖으로 터져나와
마음 한없이 가볍네
그 마음 눈 온 날 신새벽 아직 발자국 찍히지 않은 풍경이네.
술 깬 아침이면
벌써 후회하기 시작하네
그렇다 할지라도
욕할 수 있었던
긴밤의 자유는 얼마나 행복했던 것이냐.

 

* 불가음주 단연불가(不可飮酒 斷然不可) - 채만식

뻑뻐억한 막걸리를 큼직한 사발에다가 넘실넘실하게 그득 부은 놈을 처억 들이대고는 벌컥 벌컥 한입에 주욱 다 마신다.

그러고는 진흙 묻은 손바닥으로 입을 쓰윽 씻고 나서 풋마늘대를 보리고추장에 꾹찍어 입가심을 한다.

등에 착 달라붙은 배가 불끈 솟고 기운도 솟는다. 

-채만식의 막걸리 일부분

 

* 영국(詠菊) - 고의후 

有花無酒可堪嗟

有酒無人亦奈何

世事悠悠不須問

看花對酒一長歌

-

꽃 있고 술 없으면 한심스럽고

술 있고 친구 없으면 또한 딱한 일이네

세상일 하염없으니 따질 것 무엇이랴

꽃 보고 술잔 들고 한바탕 노래나 부르세 *

 

* 自詠 - 김병연
寒松孤店裡 高臥別區人 - 한송고점리 고와별구인
近峽雲同樂 臨溪鳥與隣 - 근협운동락 임계조여린
錙銖寧荒志 詩酒自娛身 - 치수영황지 시주자오신
得月卽帶憶 悠悠甘夢頻 - 득월즉대억 유유감몽빈
 

-스스로 읊다 

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한가롭게 누웠으니 별세상 사람일세
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같이 노닐고 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하찮은 세상 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달이 뜨면 옛 생각도 하며 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
 

 

* 산중여유인대작(山中輿幽人對酌) - 이백(李白) 

兩人對酌山花開 - 유인대작산화개 

一杯一杯復一杯 - 일배일배부일배

我醉欲眠卿且去 - 아취욕면경차거 

明朝有意抱琴來 - 명조유의포금래

-산중에서 나누는 술 

둘이 마주앉아 술 마시는데 산에 꽃이 피었네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나 취하여 졸리니 이 사람아 돌아가게나

내일 생각 있거든 거문고나 안고 오시게 *

* 이병한엮음[땅 쓸고 꽃잎 떨어지기를 기다리노라]-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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