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5월 시 모음

효림♡ 2011. 4. 30. 15:26

* 5월 아침 - 김영랑  
비 개인 5월(五月) 아침
혼란스런 꾀꼬리 소리
찬엄(燦嚴)한 햇살 퍼져 오릅내다

이슬비 새벽을 적시울 지음
두견의 가슴 찢는 소리 피어린 흐느낌
한 그릇 옛날 향훈(香薰)이 어찌
이 맘 홍근 안 젖었으리오마는

이 아침 새 빛에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 저리 부드러웁고
그 보금자리에 찌찌찌 소리내는 잘새의 발목은 포실거리어
접힌 마음 구긴 생각 이제 다 어루만져졌나 보오


꾀꼬리는 다시 창공(蒼空)을 흔드오
자랑찬 새 하늘을 사치스레 만드오
사향(麝香) 냄새도 잊어버렸대서야
불혹(不惑)이 자랑이 아니 되오
아침 꾀꼬리에 안 불리는 혼(魂)이야
새벽 두견이 못 잡는 마음이야
한낮이 정익(靜謚)하단들 또 무얼하오


저 꾀꼬리 무던히 소년(少年)인가 보오
새벽 두견이야 오랜 중년(中年)이고
내사 불혹(不惑)을 자랑턴 사람 *

 

* 네 눈망울에서는 - 신석정 

네 눈망울에서는
초록빛 五月
하이얀 찔레꽃 내음새가 난다
 
네 눈망울에서는
초롱 초롱한
별들의 이야기를 머금었다.
 
네 눈망울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아득한 鐘소리가 들린다.
 
네 눈망울에서는
머언 먼 뒷날
만나야 할 뜨거운 손들이 보인다.
  
네 눈망울에서는
손잡고 이야기할
즐거운 나날이 오고 있다.

 

* 5월 - 오세영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아, 살아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

 

* 아, 오월 - 김영무 

파란불이 켜졌다

꽃무늬 실크 미니스커트에 선글라스 끼고

횡단보도 흑백 건반 탕탕 퉁기며

오월이 종종걸음으로 건너오면 

 

아, 천지사방 출렁이는

금빛 노래 초록 물결

누에들 뽕잎 먹는 소낙비 소리

또 다른 고향 강변에 잉어가 뛴다 *

 

* 모란꽃과 고추장 항아리 - 김금용

오월 햇살에 고추장 항아리 배부르다
열 남매 키운 기사식당 아줌마
저처럼 배부른 항아리 씻다가
붉은 입술 삐죽이며 함박웃음 짓는
장독대 옆 모란  꽃더미에 놀라
엉덩방아 찧으며 주저앉는다
눈치 빠른 봄바람
쓸쓸한 그녀 젖무덤 파고들며
주름 깊은 눈자위 군살 붙은
목덜미로 햇살을 부른다

 

장마와 가뭄을 이기고 오십 년
묵은 장맛으로 단맛 키운 항아리
오월 아침 모란꽃이 눈부셔도
굽은 허리 일으키는 산등성 너머로
우르르 몰려드는 꿀벌떼는
항아리 언저리에만 붙어 날개 비빈다
암술 올라타며 입술 부비다 말고
문 좀 열어라
배불뚝이 항아리를 두들긴다

* 김금용시집[넘치는 그늘]-천년의시작

 

* 파꽃 - 김영준

빈 집임을 알면서도

전화를 넣어보았다

울림은 울림으로 되돌아 올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5월은 또 그렇게 시작되고

그냥 그 눈물마저 그리우므로

그립다는 말 한 마디 하고 싶었다

그립다아아아 *

 

* 오월 - 유재영

상추꽃 핀

아침

 

자벌레가

기어가는

지구 안쪽이

자꾸만

간지럽다 *

 

* 오월 편지 - 도종환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 달 두 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깊은 침묵이 앉습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사는지 아는 까닭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꽃잎에 편지를 씁니다

소리 없이 흔들리는 붓꽃 잎처럼 마음도 늘 그렇게 흔들려

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않게 또 하루를 보내고

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자리로 바람이 가득가득 몰려옵니다

뜨거우면서도 그렇게 여린 데가 많던 당신의 마음도

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이 땅을 다녀갑니까

저무는 하늘 낮달처럼 내게 와 머물다 소리 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

 

* 오월 아침 - 나태주

가지마다 돋아난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눈썹이 파랗게 물들 것만 같네요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금세 나의 가슴도
바다같이 호수같이
열릴 것만 같네요

돌덤불 사이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으려면
내 마음도 병아리떼같이
종알종알 노래할 것 같네요

봄비 맞고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져보면
손끝에라도 금시
예쁜 나뭇잎이 하나
새파랗게 돋아날 것만 같네요

 

* 5월 - 나태주

벙그는 목련꽃송이 속에는
아, 아, 아, 아프게 벙그는 목련꽃송이 속에는
어느 핸가 가을 어스름
내가 버린 우레 소리 잠들어 있고
아, 아, 아, 굴뚝 모퉁이 서서 듣던
흰구름 엉켜드는 아픈 소리
깃들어 있고
천년 전에 이 꽃의 전신을 보시던 이,
내게 하시는 말씀도 스며서 있다.  
당신이 천년 전에 생겨나든지
제가 천년 후에 생겨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시무룩히 고개 숙인 옆얼굴까지 속눈썹까지
겹으로 으슥히 스며서 있다.
그늘 아래 샘물로 스며서 있다.

 

* 5월 - 최영철 
왕피천 바닥이
알 낳고 죽은 은어로 가득하다
봄 지나 여름으로 가던 따끔따끔한 햇살들
투명한 수의를 만들며 개울을 덮는다
갈매기 몇 마리 물어뜯다 간
주검의 사타구니 사이
옹알옹알 알들이 깨어나
제 어미의 길을 간다
아니라아니라 물길을 거슬러

 

* 5월의 사랑 - 송수권 
누이야 너는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가
오월의 저 밝은 산색이 청자를 만들고 백자를 만들고
저 나직한 능선들이 그 항아리의 부드러운 선들을 만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이야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네 사는 마을 저 떠도는 흰구름들과 앞산을 깨우는
신록들의 연한 빛과 밝은 빛 하나로 넘쳐흐르는 강물을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푸른 새매 한 마리가 하늘 속을 곤두박질하며 지우는
이 소리 없는 선들을, 환한 대낮의 정적 속에
물밀듯 터져오는 이 화녕끼 같은 사랑을
그러한 날 누이야, 수틀 속에 헛발을 딛어
치맛말을 풀어 흘린 춘향이의 열두 시름 간장이
우리네 산에 들에 언덕에 있음직한 그 풀꽃 같은 사랑 이야기가
절로는 신들린 가락으로 넘쳐흐르지 않겠는가
저 월매의 기와집 네 추녀끝이 허공에 나뜨는 날.

 

* 오월 - 조연호

  비내리던 오월이 그쳤다. 숲이 가난한 자들의 빈 그릇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모서리에 몰려 서서 심장이 저울질 당하는 소리를

들었다. 부드러운 비에 꽂혀 하늘이 아프게 하수구까지 걸어온다. 쥐들의 지붕 타는 소리가 엄마의 재봉틀 굴리는 소리만큼 크다. (뜻도 없이 문이 밀쳐지고, 한 번쯤 분노해야 할 일이 없을까. 나는 그리다만 그림에 붉은 명암을 넣었다.) 어쩌면 세상은 평안하고,

이렇게 될 줄 예감하면서 주일이면 동네 확성기에서 찬송이 쏟아졌을 것이다.

죽은 꽃과 죽은 바람을 차마 볼 수 없어 등(燈)을 켜지 않았다.

 

  오늘은 늦은 식사로부터 와서 늦은 식사로 떠난다. 붉고 지친 꽃잎 위로 지하 방직공장 실먼지가 희미하게 올라온다. 늦은 식사.

우는 엄마들, 햇복숭아를 사들고 칠팔월로 훌쩍 가버리는 오월. 분수대에 손을 넣고 바람의 패총을 줍는다. 덜 마른 기억의 껍질들이 손가락 사이로 뚝뚝 떨어진다. 앙천의 눈매 되뜨는, 이 짙은 오월, 한 번쯤 분노해야 할 일은 없는가. 비 갠 하늘빛을 따라 느린 삶을 옮기는 달팽이와 그의 늙은 집과 그의 집이 옮겨가며 뒤에 남는 반짝이는 것들이 함께 모두 길이 되어 가고 있었다. *

 

* 5월 - 장석남

아는가, 

찬밥에 말아먹는 사랑을

치한처럼 봄이 오고

봄의 상처인 꽃과

꽃의 흉터로 남는 열매

앵두나무가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앵두꽃잎을 내밀 듯

세월의 흉터인 우리들

요즘 근황은

사랑을 물 말아먹고

헛간처럼 일어서

서툰 봄볕을 받는다 *

 

* 5월 - 김용택

연보라색 오동꽃 핀

저 화사한 산 하나를 들어다가

"이 산 너 다 가져"하고

네 가슴에 안겨주고 싶다. *

 

* 5월을 드립니다 - 오광수 
 
당신 가슴에
빨간 장미가 만발한

5월을 드립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생길 겁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느낌이 자꾸 듭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많이 많이 생겨나서
예쁘고 고른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얼굴 가득히 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당신 모습을 자주 보고 싶습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기분이 자꾸 듭니다
당신 가슴에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5월을 가득 드립니다 *

* 오광수시집[내가 당신에게 행복이길]-고이북

 

* 5월의 마술 - M.와츠

작은 씨 하나

뿌렸죠.//

흙을 조금

씨가 자라게

조그만 구멍

토닥토닥//

잘 자라라고 기도하면

그만이에요.//

햇빛을 조금

소나기 조금

세월이 조금

그러고 나면 꽃이 피지요. *


*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 하인리히 하이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흐르는 내 눈물은

꽃이 되어 피어나고

내가 쉬는 한숨은 노래가 되어 울린다.  

그대 나를 사랑하면

온갖 꽃들 보내오리.  

그대의 집 창가에서

노래하게 하오리다.

 

장미도 백합도 비둘기도 태양도

지나간 날에는 무척 사랑했었지. 

그러나 지금은 오직 한 사람

귀엽고 상냥하고 깨끗한 그녀가

나의 모든 사랑을 불타게 하는

장미요 백합이요 비둘기요 태양이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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