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 이정록
갓 깨어난 새들과 시소 놀이 해봤냐고
어린 나뭇가지들이 우쭐거리기 때문이다
잠든 새들 깨우지 않으려
이 악문 채 새벽바람 맞아본 적 있냐고
젊은것들이 어깨를 으쓱거리기 때문이다
겨울잠 자는 것들과 술래잡기하지 말라고
굴참나무들이 몇 달째 구시렁거리기 때문이다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고물고물 애벌레들 발가락에 간지러워 죽겠는데
꽃까지 피었으니 벌 나비들의 긴 혀를 어쩌나
이러다 가을 되면 겨드랑이 찢어지는 것 아니냐며
철부지들이 열매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 허튼 한숨 소리에
다람쥐며 청설모들이 입천장 내보이며 깔깔거리기 때문이다
딱따구리한테 열 번도 더 당하곤
목젖에 새알이 걸려 휘파람이 샌다고
틀니를 뺐다 꼈다 하는 늙다리 소나무 때문이다
딱따구리는 키스를 너무 좋아해, 나이테깨나 두른
고목들이 삭정이 부러지게 장단을 놓기 때문이다
지금 저 앞산 나뭇잎들이 반짝반짝 뒤집어지는 이유는
새와 벌레들에게 수만 번 잠자리를 내어주고
사람의 집으로 끌려간 기둥이며 장작들, 그 폐가에
새로 들어온 인생 하나가 마루를 닦고 있기 때문이다
젊어 어깃장으로 들쳐 멘 속울음의 나이테를
제 삭정이로 어루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걸레를 쥔 사람의 손을 새 발가락인 줄 잘못 알고
눈빛 반짝이는 문지방이며 마루의 나뭇결들
그걸 나뭇잎들이 손뼉 치며 흉내 내기 때문이다
도대체 몇 년 만에 만나는 굴뚝 연기냐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깨 너머 뒷산들이
폐광의 옆구리를 들쑤시기 때문이다
좌충우돌, 페광 속 박쥐들이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 이정록시집[의자]-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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