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꽃피는 날 꽃 지는 날 - 구광본

효림♡ 2011. 9. 26. 08:51

* 꽃 피는 날 꽃 지는 날 - 구광본 

꽃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 이별이 아니고요

 

마당 한 모퉁이에 꽃씨를 뿌립니다

꽃피는 날에서 꽃 지는 날까지

마음은 머리 풀어 헤치고 떠다닐 테지요

 

그대만이 떠나간 것이 아닙니다

꽃 지는 날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고요

그대의 뒷모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날이 새로 잎 피는 길을 갑니다 *

 

* 삼각산 - 이성부  

가까이에 있는 산은

항상 아내 같다

바라보기만 해도 내 것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재미있는 산

더 많이 변화를 감추고 있는 산

가까이에서 더 모르는 산

그래서 아내 같다

거기 언제나 그대로 있으므로

마음이 놓인다

 

어떤 날에는 성깔이 보이고

어떤 날에는 너그러워 눈물난다

칼바위 등걸이나 벽이거나

매달린 나를 떠밀다가도

마침내 마침내 포근히 받아들이는 산

서울 거리 어디에서도

바라보기만 하면 가슴이 뛰는 산

내 것이면서 내가 잘 모르는 산 *

 

* 경주 남산(南山)에 와서 - 유안진  

묻노니, 나머지 인생도
서리 묻은 기러기 죽지에
북녘 바람길이라면

 

차라리
이 호젓한 산자락 어느 보살(普薩) 곁에
때이끼 다숩게 덮은
바위로나 잠들었으면

 

어느 훗날
나같이 세상을 춥게 사는

석공(石工)이 있어
아내까지 팽개치도록
돌에 미친 아사달(阿斯達) 같은
석수(石手)장이 사나이 있어

 

그의 더운 손바닥
내 몸 스치거든
활옷 입은 신라녀(新羅女)로 깨어나고저. *

 

* 박달재 - 도종환 

고개를 넘다 바라보니 안개꽃 같은 별들이
모두 제 있을 곳에 떠 있다
숲 사이를 지나다 바라보니 그 별들이 어느새
추위에 떨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내려와
나무들의 빈자리를 따뜻하게 메우고 있다
우리 가는 길 앞을 거친 모습으로 막고 서 있는
검푸른 산맥 사이를 지날 때면 그 위에 편안히 누워
두려움 속에서도 늘 여유를 잃지 말라 한다
별은 길 없는 하늘 가운데에서도
모두들 제 갈 길을 소리없이 찾아가면서
우리가 고개를 넘을 때마다 우리보다 먼저
고갯마루에 별 여러 형제를 보내 기다리게 하거나
빈 들판 끝까지도 일일이 젊은 별들을 보내
이 세상이 다만 황량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지상에선 꽃들이 하늘에선 별들이
살면서 제 모습을 잃지 않으며
외롭고 비어 있는 것들의 곁으로 가
그곳까지 아름답게 바꾸어놓고 있다
별이 있어서 고개를 넘는 밤
별이 있어서 마음을 잃지 않는 밤. *

 

* 신정일엮음[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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