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길 시 모음

효림♡ 2011. 12. 26. 09:38

* 가는 길 - 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 김소월시집[진달래꽃]-미래사

 

* 길 -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 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

 

* 길 -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에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뿐 숨소리 따라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몰랐다.
저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

 

* 구름과 바람의 길 - 이성선 
실수는 삶을 쓸쓸하게 한다.
실패는 생(生) 전부를 외롭게 한다.
구름은 늘 실수하고
바람은 언제나 실패한다.
나는 구름과 바람의 길을 걷는다.
물 속을 들여다보면
구름은 항상 쓸쓸히 아름답고
바람은 온 밤을 갈대와 울며 지샌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길
구름과 바람의 길이 나의 길이다.  

 

* 길은 그렇게 - 김종상 
두엄내 풍겨오는 들판을 지나          
놀빛 고운 산마루를 기어 넘고  
울멍줄멍 구름골짜기를 감돌아  
길은 저 혼자서 가고 있었다.  

물비린내 풍기는 갯벌을 따라      
끝없이 설레는 물이랑을 누벼서      
마파람 몰아오는 수평선 너머로    
길은 쉬지 않고 가고 있었다. 

           
애달픔처럼 먼 바다를 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나는                          
길을 따라, 길과 더불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항상 함께 다니는 나의 길. 
 

* 조문(弔文) - 안도현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살아서 눈 어두운 동네 노인들 편지 읽어주고 먼저 떠난 이들 묏자리도 더러 봐주고

추석 가까워지면 동네 초입의 풀 환하게 베고 물꼬싸움 나면 양쪽 불러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심판 봐주던//
이 동네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슬프도록 야문 길이었다.//
돌아가셨을 때 문상도 못한 나는 마루 끝에 앉아, 할아버지네 고추밭으로 올라가는 비탈, 오래 보고 있다.
지게 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할아버지가 오르내릴 때 풀들은 옆으로 슬쩍 비켜 앉아 지그재그로 길을 터주곤 했다.
비탈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던 그 길은 여름 내내 바지 걷어붙인 할아버지 정강이에 볼록하게 돋던 핏줄같이 파르스름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비탈길을 힘겹게 밟고 올라가던
느린 발소리와 끙, 하던 안간힘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그만//
길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풀들이 우북하게 수의를 해 입힌 길,
지금은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 위로
조의를 표하듯 산그늘이 엎드려 절하는 저녁이다.

* 안도현시집[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

 

* 가는 길 - 이문재 

가는 길에 은행잎 구른다
저무는 시월 소리 내면 읽히지 않고
저녁에도 부는 바람 가끔씩 있어
긴 그림자 버짐 같은 먼지 일으킨다
한 입 시린 무거나 배춧속 같은
그날들도 큰소리로 읽기엔 부끄럽다
가는 길 갈수록
가슴 설렐 일 드물 것인데
가는 길 어느새 가파르다
지는 노을 산 그림자
한 짐씩 어둠의 푸른 데로 옮겨 앉는다

이 밤 한 번 그리움에 져주자
나 아직도 나에게 들킬 일 남아 있는가 *

 

* 길 - 김명인 
길이 제 길을 접고 한 곳에 들기까지는
수많은 네거리를 거쳐 가야 한다
상가와 고층 아파트
근린 공원과 주택 단지로 갈라선 봉송 사거리
길이 길로 가로막히는 것은 언제나
신발 대신 날개를 매다는 새 길 탓이지만
멀고 또 가까워 길은 길을 퍼다 버릴 뿐
어떤 바퀴로도 제 길을 실어 나르지 못한다
검은 띠로 영정을 두르고 국화 꽃다발 포개 싣고
멀리 산 쪽을 당겨가고 있는 저 길조차
길을 꺾어 마침내 한 골짜기에 파묻히기까지는
트인 네거리마다 돋아나는 날개 잘라내느라
한참씩 멈칫거리거나 오래 끙끙대야 한다 *

 

* 길 - 최영철

청소부가 한나절 쓸어놓고 간

지상의 길이

마음이 차지 않는지

가로수는

조금 전까지 산들거리며 하늘을 닦고 있던

제 손바닥을 거두어

우수수 아래로 날려 보냈다

지나가는 사람들 발길에 채이고 밟히면서

그 손바닥들은

제멋대로 흩어진 지상의 길을

팽글팽글 구르며

닦고 또 닦아주었다

 

말끔히 닦인 그 길로

금방 진흙탕을 건너온 한 사나이의

비틀거리는 발자국이 찍히고 있다 *

 

* 봄 감기 걸린 둑길 - 최동호

조청같이 진한
녹차 한 잔 마시고
빈속에 한 줌 찻잎을 씹는다

바늘 돋은 혀 찻잔에 대고
언 강속에 흐르는
푸른 물로 은빛 아가미 같은 가슴을 적신다

버들피리 비늘 같은
까치 소리 풀잎 편지 전하며 강 언덕 너머에서
감기 들린 목구멍 같은 봄 둑길을 걷자고 한다 *

* 정끝별의 밥시이야기[밥]-마음의숲

 

* 나뭇가지길 - 위선환 
옥동마을 어귀에 선 250년 묵은 노송 한 그루, 하늘 중턱에다 걸쳐놓은 가지가 반들하게 닳았습니다. 죽을 작정하고 오르내렸다 쳐도 하필이면 그 길인데 흔적 남겼겠느냐고, 늙은 들쥐는 탁! 침 뱉더니 그만이고, 나야 잿밥 남은 것 밖에는 마음 쓰는 것 없다고, 까마귀란 놈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직 사람들입니다. 별들이 호롱불 들고 늘어섰던 한밤중일까요? 깜깜한 골목길을 걸어 나온 이들이 반쯤 덜 깬 꿈길로 디디고 올랐겠습니다. 실낱같은 목숨도 챙기지 못해서, 아주 내버릴 빈 몸으로만, 외나무다리 건너듯 밟고 올랐겠습니다. 바람소리 자욱한 나뭇가지길, 길 끝으로 빤하게 하늘이 내다보입니다. *

 

* 밤길 - 김영재

산이 산을 껴안고

겹겹이 잠드는 밤

우리는 길을 잃고 길 찾아 상처 입는다

그 상처

별이 될 때까지

걷고 또 걷는 밤길

 

산에서 밤을 만나면

육신의 눈 닫힌다

속세의 그리움도 욕망의 겨드랑이도

끊어져

무너져 내리는 밤

빛 삼킨 어둠만 불멸! 

 

* 길은 아름답다 - 신경림 
산벚꽃이 하얀 길을 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서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답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서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서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 비단길 2 - 강연호

잘못 든 길이 나를 빛나게 했었다 모래시계는
지친 오후의 풍광을 따라 조용히 고개 떨구었지만
어렵고 아득해질 때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마저 가야할 어떤 약속이 지친 일생을 부둥켜 안으리라
생각했었다 마치 서럽고 힘들었던 군복무 시절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욕망의 신록이 지금 때절어 쓸쓸한데
길 잘못 들수록 오히려 무모하게 빛났던 들끓음도
그만 한풀 꺾였는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저기 또 한 고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구릉이여
이제는 눈 앞의 고비보다 그 다음 줄줄이 늘어선
안 보이는 산맥도 가늠할 만큼은 나이 들었기에
내내 웃목이고 냉골인 마음 더욱 시려오누나
따숩게 덥혀야 할 장작 하나 없이 어떻게
저 북풍 뚫고 지나려느냐,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차피 잘못 든 길 아니더냐고 세상의 현자들이
혀를 빼물지만 나를 끌고가는 건 무슨 아집이 아니다
한때 명도와 채도 가장 높게 빛났던 잘못 든 길
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갈 데까지 가보려거든 잠시 눈물로 마음 덥혀도
누가 흉보지 않을 것이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

 

* 길의 길 - 고재종

어둠 속의 길은 흩어져버린 세월과 같다

길들은 내 핏속에서 질풍노도로 일었지만

내가 지나온 길 뒷자리는 늘 폐허였다

나는 길 위에서 또 길을 찾으러 다녔으니

나는 나 자신을 찾으러 다닌 셈인가

아침놀까지 더러워질 만큼의 하늘을 보았으나

악성의 하품 때문에 나는 심심하지 않았다

난장 난 계절의 억새밭을 지날 때

나는 거기 가장 황량한 곳에 머물고 싶었다

바다는 목쉰 파도로 끊임없이 부서져도

바다의 모든 고통을 아는 자만이 귀 기울였다

누구나 길에 나서나 다 같은 길엔 아니다

우리는 우리이되, 우리가 아니어서 배회했다

웃자란 형극 속에서 길을 헤치곤 했으나

나의 어려움은 되레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잃어버릴 수도 없는 길을 향해 내가 저지른 죄,

그건 길섶에 핀 산자고를 짓이겨버린 일이었다

근사한 말만 만나면 빛나는 잠언을 쏟아내며

길을 노래하곤 하는 무수한 시인들이여

조주도 물었다, 길이란 어떤 것입니까

평상심(平常心)이 그것이다, 남전이 답했으나

길을 길이라 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어서

나는 다시 피에 젖은 흙빛의 길 위에 섰다

길은 항상 저만큼의 풍광 속에서 일렁거렸다 *

 

* 길 - 황지우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보면
朝鮮八道,
모든 명당은 초소다

한려수도, 內航船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 *

* 황지우시집[게 눈 속의 연꽃]-문지

 

* 길 - 김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

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
 

* 아름다운 길 - 도종환 
너는 내게 아름다운 길로 가자 했다
너와 함께 간 그 길에 꽃이 피고 단풍 들고
길 옆으로 영롱한 음표들을 던지며 개울물이 흘렀지만
겨울이 되자 그 길도 걸음을 뗄 수 없는 빙판으로 변했다

너는 내게 끝없이 넓은 벌판을 보여달라 했다
네 손을 잡고 찾아간 들에는 온갖 풀들이 손을 흔들었고
우리 몸 구석구석은 푸른 물감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빗줄기가 몰아치자 몸을 피할 곳이 없었다

내 팔을 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넘어질 때 너도 따라 쓰러졌고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세찬 바람 불어올 때마다
너도 그 바람에 꼼짝 못하고 시달려야 했다

밤새 눈이 내리고 날이 밝아도
눈보라 그치지 않는 아침
너와 함께 눈 쌓인 언덕을 오른다
빙판 없는 길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며 함께 꽃잎 같은 발자국을 눈 위에 찍으며
넘어야 할 고개 앞에 서서 다시 네 손을 잡는다
쓰러지지 않으며 가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눈보라 진눈깨비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

* 도종환시집[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 들길 - 도종환

들길 가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 만나거든

거기 그냥 두다 보고 오너라

숲속 지나다 어여쁜 새 한 마리 만나거든

나뭇잎 사이에 그냥 두고 오너라

네가 다 책임지지 못할

그들의 아름다운 운명 있나니

네가 끝까지 함께할 수 없는

굽이굽이 그들의 세상 따로 있나니 *

* 도종환시집[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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