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2월 시 모음

효림♡ 2012. 1. 31. 11:34

* 2월 - 안도현 
진눈깨비 속에서 졸업식이다
붉고 큰 꽃다발 가슴으로 슬프고 기쁜 기념사진을 찍는다
식구들과 한판 벗들과도 한판 그리고 독사진도 한판
발등에서 머리끝까지 밀가루 하얗게 뒤집어쓰고
눈발처럼 키득거리는 놈도 있다 평소에 밥먹듯이 매 맞던 녀석이다
그래도 장차 시대구분할 임자는
이 흥청대는 아이들 중에 있다
내 눈에는 이 튼튼한 장정들의 아침의 나라가 보인다 *

 

* 2월(January) - 오세영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

 

* 2월 - 조용미 

상한 마음의 한 모서리를
뚝뚝 적시며
정오에 내리는 비
겨울 등산로에 찍혀 있던 발자국들이
발을 떼지 못하고
무거워진다

 

응고된 수혈액이 스며드는
차가운 땀
있는 피를 다 쏟은 후에야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나
비의 피뢰침이 내려꽂히는
지상의 한 귀퉁이에
바윗덩어리가 무너져내린다
우듬지가 툭 끊어진다

 

겨울산을 붉게 적시고 나서
서서히 내게로 오는 비

 

* 2월 - 문인수  

그대 생각의 푸른 도화연필 같은 저녁이여,

시린 바람의 억새 사이사이가 자디잘게 자디잘게 풀린다

나무와 나무 사이

나무와 억새와 바위 사이가 또한 거뭇거뭇

소문처럼 번져 잘 풀리면서

산에 있는 것들 모두

저 뭇 산의 윤곽 속으로 흘러들었나,

불쑥불쑥 지금 가장 확실히 일어서는 검은 산 아래

저 들판 두루 사소한 것들의 제방 안쪽도 차츰 호수 같다

다른 기억은 잘 보이지 않는 저녁이여

세상은 이제 어디라 할 것 없이 부드러운 경사를 이루고

그립다, 그립다, 눈머는구나

저렇듯 격의없이 끌어다 덮는 저녁이여

산과 산 사이, 산과 마을 들판 사이

아, 천지간

말이 없었다 그대여

마음이 풀리니 다만 몸이 섞일 뿐인 저녁이여 *   

* 문인수시집[동강의 높은 새]-세계사,2000

 

* 2월에는 - 이향아   
마른 풀섶에 귀를 대고
소식을 듣고 싶다
빈 들판 질러서
마중을 가고 싶다

해는 쉬엄쉬엄
은빛 비늘을 털고
강물 소리는 아직 칼끝처럼 시리다

맘 붙일 곳은 없고
이별만 잦아
이마에 입춘대길
써 붙이고서
놋쇠 징 두드리며
떠돌고 싶다

봄이여, 아직 어려 걷지 못하나
백리 밖에 휘장 치고
엿보고 있나

양지바른 미나리꽝
낮은 하늘에
가오리연 띄워서
기다리고 싶다
아지랑이처럼 나도 떠서
흐르고 싶다

 

* 2월 - 김용택

방을 바꿨다

한 개의 산봉우리는 내 눈에 차고

그 산봉우리와 이어진 산은 어깨만 보인다.

강과 강 건너 마을이 사라진 대신

사람이 살지 않은 낡은 농가가 코앞에 엎드려 있다.

텅 빈 헛간과 외양간, 분명하게 금이 간 슬레이트 지붕,

봄이 오지 않은 시멘트 마당에

탱자나무 감나무 밤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뒤엉킨다.

봄이 아직 멀었다. 노란 잔디 위에서 떠드는 아이들 소리가 등뒤에서 들린다.

계절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늘 햇살을 한짐씩 짊어지고 뛰어다닌다.

방을 바꿨다.

방을 바꾼다고 금세 삶이 바뀌지 않듯 풍경이 바뀐다고 생각이 금방 달라지진 않는다.

눈에 익은 것들이 점점 제자리로 돌아가고

그것들이 어디서 본 듯 나를 새로 보리라.

날이 흐려진다.

비 아니면 눈이 오겠지만

아직은 비도 눈으로 바뀔 때,

나는 어제의 방과 이별을 하고

다른 방에 앉아

이것저것 다른 풍경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나도 이제 낡고 싶고 늙고 싶다.

어떤 이별도 이제 그다지 슬프지 않다.

덤덤하게, 그러나 지금 나는 조금은 애틋하게도, 쓸쓸하게

새 방에 앉아 있다.

산동백이 피는지 문득, 저쪽 산 한쪽이 환하다. 아무튼,

아직 봄이 이르다. *

* 김용택시집[수양버들]-창비

 

* February Twilight - Sara Teasdale 

I stood beside a hill

Smooth with new ㅡ laid snow,

A single star looked out

From the cold evening glow.

 

There was no other creature

That saw what I could see ㅡ

I stood and watched the evening star

As long as it watched me.

- 2월의 황혼 - 사라 티즈데일

새로 눈 쌓여 매끄러운

산 옆에 서 있었습니다.

차가운 저녁 빛 속에서

별 하나가 내다봅니다.

 

내가 보고 있는 걸

아무도 보는 이 없었지요.

나는 서서 별이 나를 보는 한

끝없이 그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 - 장영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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