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이해인 꽃시 모음 2

효림♡ 2012. 2. 10. 14:04

* 초롱꽃 - 이해인   

내 마음은

차고 푸른 호수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시면
뜨겁게 움직이는
화산입니다

당신이 사랑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시면

조금 더 총명해 지고
조금 더 겸손해 지고
조금 더 믿음이 깊어지는
한 송이 꽃 입니다

당신의 발걸음을 들으면
고요한 마음에 파문이 이는
가만 있을 수가 없어
맨발로 뛰어나가는

참 어쩔 수 없는
초롱초롱
초롱꽃입니다 *

 

* 물망초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아달라고

나를 잊어선 안 된다고

차마 소리 내어

부탁하질 못하겠어요

 

죽는 날까지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내가 먼저 약속하는 일이

더 행복해요

 

당신을 기억하는

생의 모든 순간이

모두가 다

꽃으로 필 거예요

물이 되어 흐를 거예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

 

* 등꽃 아래서

차마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것일까
수줍게 늘어뜨린
연보라빛 꽃타래

혼자서 등꽃 아래 서면
누군가를 위해
꽃등을 밝히고 싶은 마음

나도 이젠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리

세월과 함께
뚝뚝 떨어지는 추억의 꽃잎을 모아
또 하나의 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리

때가 되면 아낌없이
보랏빛으로 보랏빛으로
무너져 내리는 등꽃의 겸허함을

배워야 하리 *

 

* 백일홍 편지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모든 만남은 생각보다 짧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부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지금부터

백 일만 산다고 생각하면

삶이 조금은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처음 보아도

낯설지 않은 고향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백일홍

 

날마다 무지갯빛 편지를

족두리에 얹어

나에게 배달하네

 

살아 있는 동안은

많이 웃고

행복해지라는 말도

늘 잊지 않으면서ㅡ *

 

* 수국을 보며

기도가 잘 안 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 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무더기로 쏟아지네
*

 

* 꽃의 연가

너무 쉽게 나를
곱다고만 말하지 말아 주세요
한 번의 피어남을 위해
이토록 안팎으로
몸살 앓는 나를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혼자만의 아픔을
노래로 봉헌해도
아직 남아 있는 나의 눈물은
어떠한 향기나 빛깔로도
표현할 수가 없어요

피어 있는 동안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를 위한
나의 기도인 것처럼
시든 후에도 전하는
나의 말을 들어 주세요

목숨을 내놓은
사랑의 괴로움을
끝까지 견디어내며
무거운 세월을 가볍게 피워올리는
바람 같은 꽃
죽어서도 노래를 계속하는
그대의 꽃이에요 *


* 눈물꽃

잘 울어야

눈물도

꽃이 됩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를 위해 울 때

 

너무 오래 울지 말고

적당히 울 때

 

아름다움을 향한 그리움으로

감동하거나 안타까워서 울 때

 

허영심을 버리고

숨어서 울 때

 

죄를 뉘우치는 겸손으로

착하게 울 때

 

눈물은

진주를 닮은

하나의 꽃이 됩니다

세상을 적시며 흐르는 강물꽃

눈물꽃이 됩니다 *

 

* 봄까치꽃

까치가 놀러나온
잔디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반가워서 큰 소리로
내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

잊었던 네 이름을 찾아
내가 기뻤던 봄

노래처럼 다시 불러보는
너, 봄까치꽃

잊혀져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나도 너처럼
그렇게 살면 좋겠네 *

 

* 이해인꽃시집[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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