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도엘 가서 - 신석정
오동도엘
갈거나!//
오동도엘
가서
숱하게 핀
동백꽃 우슴소릴
들을거나!//
시나대 숲을
돌아가면
시나대보다 높은
바다가 일렁이고//
일렁이는 바다로
노을 비낀 속에
동백꽃 떨어지는
소릴 들을거나//
오동도엘
가서
동백꽃보다
진하게 피맺힌
가슴을 열어 볼거나! *
* 동백 -미황사에서 - 박남준
동백의 숲까지 나는 간다
저 붉은 것
피를 토하며 매달리는 간절한 고통 같은 것
어떤 격렬한 열망이 이 겨울 꽃을 피우게 하는지
내 욕망의 그늘에도 동백이 숨어 피고 지고 있겠지
지는 것들이 길 위에 누워 꽃길을 만드는 구나
동백의 숲에서는 꽃의 무상함도 다만 일벌해야 했으나
견딜 수 없는 몸의 무게로 무너져 내린 동백을 보는 일이란
곤두박질한 주검의 속살을 기웃거리는 일 같아서
두 눈은 동백 너머 푸른 바다 더듬이를 곤두세운다
옛날은 이렇게도 끈질기구나
동백을 보러갔던 건
거기 내안의 동백을 부리고자 했던 것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떨어지네
무수한 칼날을 들어 동백의 가지를 치고 또 친들
나를 아예 죽고 죽이지 않은들
저 동백 다시 피어나지 않겠는가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피어나네
* 매천사당에서 - 복효근
절명하듯 동백꽃 지는
화엄사 곁에 두고
전남 구례군 광의면 월곡리
매천사당
뜰 앞 매화향기 높은데
병든 사직의 야록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
초상화 둥근 안경 너머
눈빛이 시리다
눈 쌓인 노고단 바라보며
잠시 내 죽음의 자세를 생각하다 *
* 복효근시집[목련꽃 브라자]-천년의시작, 2005
* 선운사 점묘 - 서정춘
동백숲이 定處(정처)다//
아껴서 듣고 싶은 철새가 운다//
울다가 그만 둔다//
귓속이 환해진다//
동백숲 그늘을 치고 동백이 진다//
할! 맞아 떨어진 點火(점화)를 본다 *
* 겨울 선운사에서 - 이상국
누가 같이 자자 그랬는지
뾰로통하게 토라진 동백은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절 아래 레지도 없는 찻집
담벼락에서 오줌을 누는데
분홍색 브래지어 하나 울타리에 걸려 있다
저 젖가슴은 어디서 겨울을 나고 있는지
중 하나가 잔뜩 허리를 구부리고
고해(苦海)만한 절마당을 건너가는 저녁
나도 굵은 체크무늬 목도리를 하고
남이 다 살고 간 세상을 건너가네 *
* 얼음 불꽃 - 김효중
눈 내린 겨울밤에
동백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
화르르 화르르 고요를 깨고 있네
모든 생명 숨죽여 조용히
삶을 내려놓을 때
저 혼자 뜨거운 불을 지피네
깨어있는 자만 비로소 눈 뜨는
잠들지 못하는 건 저 동백꽃
온 세상문 일제히 닫히고
아득한 방황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나
너는 오로히 삶을 읊조리고 있구나
참으면서 키워내는
외로움의 겨울 나무들
꽃술을 화알짝 열고 귀 기울이는데
금빛가루 더욱 눈이 부셔라
칙칙한 계절을 화안히 열어보이는데
어디선가 동박새 한 마리 날아와
동백나무 가지를 차고 오른다
아, 겨울꽃으로 반짝이는
화안한 짓붉은 순백의 순간이련가
* 동백 - 유자효
햇살의 은총을 가장 많이 받는 꽃
엄동 삭풍 흰 눈 속에
저 햇살은 얼마나 따스하며
얼마나 찬란한가
연둥 가장 아름다운 해를 독점하고
그 은혜를 홀로 담뿍 받다가
뭇 꽃들 다투어 피기 시작하면
새초름히 입 다물며 모가지째 떨어지는
매서움
왕족 같은 개결함이어 *
* 유자효시집[주머니 속의 여자]-시학
지금 여수 오동도는
동백이 만발하는 계절
동백 열차를 타고 꽃 구경 가요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인 삼월의 신부와 함께
오동도, 그 푸른
동백섬을 사람들은
여수항의 눈동자라 일컫지요
우리 손을 잡고 그 푸른 눈동자 속으로 걸어들어가요
그리고 그 눈부신 꽃 그늘 아래서 우리 사랑을 맹세해요
만약 그 사랑이 허튼 맹세라면 사자처럼 용맹한
동백들이 우리의 달콤한 언약을 모두 잡아먹을 거예요
말의 주춧돌을 반듯하게 놓아요 풀무질과 길쌈을 다시 배워요
저 길길이 날뛰던 무쇠덩어리도 오늘만큼은
화사하게 동백열차로 새로 단장됐답니다 삶이 비록 부스러지기 쉬운 꿈일지라도우리 그 환한 백일몽 너머 달려가 봐요 잠시 눈 붙였다
깨어나면 어느덧 먼 남쪽바다 초승달 항구에 닿을 거예요 *
* 송찬호시집[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
* 모란 동백 - 이제하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랫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
* 동백언덕에서 - 양중해
십 년 뒤에 동백언덕에 갔더니
동백꽃은 예전대로 붉게 피었더구나
전에 왔던 얼굴 기억해두었다가
어찌 혼자 왔느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것이 아닌가
그렇고 그렇더라고 헀더니
어찌 그럴 수가, 어찌 그럴 수가.......
슬픈 것은 나인데
동백꽃들끼리 일제히 울음을 터뜨린다
십 년 전,
내가 동백언덕을 찾아갔던 사연은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동백꽃들은 이미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었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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