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민 후계자 함현수 - 함민복
형님 내가 고기 잡는 것도 시로 한번 써보시겨
콤바인 타고 안개 속 달려가 숭어 잡아오는 얘기
재미있지 않으시껴 형님도 내가 태워주지 않았으껴
그러나저러나 그물에 고기가 들지 않아 큰일났시다
조금때 어부네 개새끼 살 빠지듯 해마다 잡히는
고기 수가 쭉쭉 빠지니 정말 큰일났시다 복사꽃 필 때가
숭어는 제철인데 맛 좋고 가격 좋아 상품도 되고.....
옛날에 아버지는 숭어가 많이 잡혀
일꾼 얻어 밤새 지게로 져 날랐다는데 아무 물때나
물이 빠져 그물만 나면 고기가 멍석처럼 많이 잡혀
질 수 있는 데까지 아주, 한 지게 잔뜩 짊어지고
나오다보면 힘이 들어 쉬면서 비늘 벗겨진 놈
먼저 버리고 또 힘이 들면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참숭어만 냉겨놓고 언지, 형님도 가숭어 알지 아느시껴
언지는 버리고 그래도 힘이 들면 중뻘에 지게 받쳐놓고
죽을 것 같은 놈 골라 버리고 그렇게 푸덕푸덕대는
숭어를 지고 뻘길 십 리 길 걸어나와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 곶뿌리 끝에 서서
담배 한 대 물고 걸어나온 길 쳐다보면서
더 지고 나오지 못한 것을 후회도 했다는데
뻘길 십 리 길 가물가물 멀기는 멀지 아느껴 힘들더라도
나도 그렇게 숭어 타작 좀 한번 해보았으면 좋겠시다
현수 씨 콤바인 타고 들어가 고기 싣고 나오는 얘기는
여차리* 일부 뻘 얘기지만 뻘이 딱딱해진다는
너무 슬픈 얘기라 함부로 글을 쓸 수 없고
아버지 얘기는 그냥 시인데 뭘 제목만
'인생' 이라고 붙이면 되지 않겠어
형님, 한잔 드시겨 *
*여차리-강화도에 있는 마을 이름
* 함민복시집[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 밤나무의 소망 - 김윤배
다 절딴낭규 지난번 바람에두 많이 상했는디 이번에는 아주 절딴나구 말었슈 왼케 바람이 쎄니께 말도 못해유 그럼유 다 쏟아지구 말었슈 퍼렇게 쏟아진 풋밤송이를 보구 있을라문 억장이 무너저유 온 산이 퍼렁규 가쟁이두 모두 찢어지구유 뿌리째 뽑힌 낭구도 수월찮유 지난해에두 밤농사는거의 망했었슈 올해는 좀 괜찮을라나 했쥬 그런디 그 오살을 할 눔의 태풍 십사홍가 멍가 하는, 하기사 삿짜 들어가서 안 죽을 눔 없능규 서울 사는 맏이유, 아이구 말두 말어유 월급쟁이 갈급쟁이라구 지 살기두 빠듯해유 멀 도와유 내가 밤 내서 돈 좀 올려보내 줄라구 그랜는디 이 모양이 됐으니 갸두 큰일이쥬 손자녀석 가에비래두 보탤라구 했는디 에릴 적부텀 꼬부랑 말하고 꼼푸터하고 가르쳐야 한다구 즈 에미가 안달이라구유 밤농사가 거덜이 났으니 이제 어쩔뀨 증말이지 억장이 무너져유 날씨 원망하기는유 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 어쩐대유 하늘만 올려다볼 뿐이쥬 대책은 무신 대책이 있겄슈 허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능규 산엘 올라야쥬 찢어진 밤낭구를 돌바야쥬 내보다 더 억장이 무너지는 눔이 밤낭구들 아니겄슈 탱글탱글한 밤알 하나 보름달빛 속으루 툭 소리 내며 떨어뜨려보능 게 밤나무들 소망 아니겄슈
지금은 라디오 시대, 최유라는 웃지 않았다 이종환이도 잠시 침묵했다 *
* 해피 버스데이 - 오탁번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왔데이 !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먼데이 !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버스데이 !
오늘이 할머니의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
* 백련꽃 사설 - 윤금초
얕은 바람에도 연잎은 코끼리 귀 펄럭이제.
연화차 자셔 보셨소? 요걸 보믄 참 기가 맥혀. 너른 접시에 연꽃이 쫙 펴 있제.
마실 땐 씨방에 뜨거운 물 자꾸 끼얹는 거여. 초파일 절에가서 불상에 물 끼얹대끼.
하나 시켜놓고 열 명도 마시고 그래, 그 향이 엄청나니께. 본디 홍련 허구는 거시기가 달라도 워느니 달러.
백련 잎은 묵어도 홍련 잎은 못 묵거든. 연근은 둘 다 묵지마는 맛이 영판 틀려. 떫고 단면이 눌눌한 것이 홍련이제.
백련 뿌리는 사각사각 하고 단면도 하얘.
백련은, 진창에 발 묻고설랑 학의 날갤 펼치제. *
* 2011'작가'가 선정한[오늘의 시]-작가
* 전화 - 박남준
어째서 당최 기별이 없다냐
에미는 이렇게 보고 싶은데
어디 갔어 내 아들아
어딜 갔는고 이 더위에
몸조심허고 끼니 거르지 말고
뭐나 끓여 먹고는 있는지
니가 하늘에서 떨어졌냐 땅에서 솟았냐
에이고 참 무심도 허다
건강 조심허고 어치든지 몸 건강허고
전화기 속에서 징징거리는 늙은 여자가 걸어 나온다
눈시울 훔치며 전화를 했던가
자동응답기 긴 장마에 젖어 지직거린다
문밖 궂은 비 한차례 또 긋고 간다
* 감나무에서 감잎 지는 사정을 - 오태환
감나무에서 감잎 지는 사정을
말해서 무엇하리
하, 몸의 귀 지천으로 창궐터니
귓불마다 진사(辰砂)무늬 철화(鐵華)무늬로
가생이를 두르며 쟁강쟁강 잉걸불 켜더니
참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지네들끼리 저 지경으로 붐비며 지는
사정을 더 말해 무엇하리
아슴아슴 꿈으로나 재우는
내 어린 첫사랑쯤 들키건 말건
검은 가지 곁가지 어름마다
하필이면 제일 깊고 투명한 하늘을 골라
무슨 참 독하기도 한 각운(脚韻)처럼
툭! 툭! 당기며 끊는
지네들 사정이야 말해 무엇하리 *
* 동그라미 - 이대흠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일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가는가라는 말은 장가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손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
* 아배 생각 - 안상학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니, 오늘 외박하냐?
-아뇨, 오늘은 집에서 잘 건데요.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야야, 어디 가노?
-예..... 바람 좀 쐬려고요.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 잘 나간다는 말 - 이정록
요즘 잘 나간다매?
잡지 나부랭이에 글 좀 쓰는 게, 뭐 잘나가는 거래유?
그게 아니고, 요새 툭 하면 집 나간다매?
지가 외출허는 건 성님이 물꼬 보러 가는 거랑 같은 거유
물꼬를 둘러보는 건 소출하고 관계가 깊은디, 아우 가출도 살림이 되나?
좋은 글 쓰려고 노력허고 있슈
요샌 우리도 물꼬 안 봐
알았슈 이제부턴 사금파리 한 쪽이라도 물고 들어올께유
입에 피칠하고 들어와서 식구들 실신시킬라구 그러남? 웬만하면 나가덜 말어
알겄슈
글이랑 게 문리를 깨치면 눈감고도 삼천리 아닌감 옆 동네 이문구 선생 같은 양반도,
글쟁이 들은 골방에서 문장이나 지으라고 그랬다잖여
방에만 있으면 글이 되간디유?
어허, 싸댕기며 이삭 모가지 뽑는다고 나락이 익간디? 집에 들앉아서 제수씨 물꼬나 잘 보란 말이여
성님이나 잘 허셔유
얘가 귓구녕이 멀었나? 인젠 물꼬 안 본다니께
근데 형수님은 어디 갔데유?
니 형수 요새 잘 나가야 몇 달 됐어 차례 지내려면 그만 자야지 않겄어
얼라, 연변이 윗마실도 아닌디 어디 가셨대유?
씨부럴, 요즘 담배는 워째 이리 젖불 쬐는 것 같댜? *
* 이정록시집[정말]-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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