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첫눈 - 김진경

효림♡ 2012. 12. 4. 20:59
* 첫눈 - 김진경

 

길바닥에까지 전을 벌려 놓은
마포 돼지껍데기집
빨갛게 달아오른 연탄화덕을 끼고 앉아
눈을 맞는다
어허 눈이 오네
머리칼 위에 희끗 희끗 눈을 얹은 윤가가 큰 눈을 뜬다
대장간에 말굽 갈아 끼러 왔다가
눈을 만난 짐말들처럼
술청 안의 사내들이 술렁댄다
푸르륵 푸르륵 김을 뿜어대기도 하고
갈기 위에 얹힌 눈을 털어내기도 하고
나는 화덕에 쇠를 달구는 대장장이처럼
묵묵히 화덕에 고기를 얹어 굽는다
길가의 플라타나스가 쇠의 녹슨 혓바닥처럼
남아있던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풀무질을 세게 해서 저것들을 달구어야겠다
말랑말랑해진 혓바닥을 두드려 쇠발굽을 만들어야겠다
저 갈기 푸른 말들에 새 발굽을 달아주어야겠다
오늘 밤 눈 쌓인 재를 넘어 다음 장으로 가기도 하고
딸랑딸랑 말방울을 울리며 사랑하는 이의 집 앞에 멈춰서기도 하리라
붉게 단 쇠발굽을 물에 담금질 할 때처럼
연탄 화덕에서 푸르게 연기가 솟는다. *

 

* 첫눈 아침 - 이은봉

 

첫눈 아침, 바윗돌처럼 단단한 한기 품고

시리게 얼어붙은 웅덩이 속 헤매고 있다

 

아침 첫눈, 하얗게 번져오는 햇살 품고

막 눈 뜨는 시냇가 버들개지 위 떠돌고 있다

 

너무 추워 큰 귀때기 쫑긋대는 산노루의 걸음으로

첫눈 아침은 내일 아침에나 온다

 

너무 시려 빨간 코끝 벌룽대는 꽃사슴의 걸음으로

첫눈 아침은 내일 아침에나 온다

 

내일 모레, 내일 모레, 내일 모레.....

반야심경처럼 외워 보는 꿈

 

모레 글피, 모레 글피, 모레 글피.....

법구경처럼 외워 보는 희망

 

버석대는 명아주 꽃대궁을 밟으며

느릿느릿 걸어오는 첫눈 아침이 있다

 

뽀얗게 껍질 벗는 버짐나무 줄기를 걷어차며

터벅터벅 걸어오는 아침 첫눈이 있다

 

그것들, 오늘 여기 있지 않아 마음 환하다

그것들, 지금 여기 있지 않아 가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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