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시 -어머니학교10 - 이정록

효림♡ 2013. 1. 20. 16:40

* 시 -어머니학교10 - 이정록 

시란 거 말이다
내가 볼 때, 그거
업은 애기 삼 년 찾기다.
업은 애기를 왜 삼 년이나 찾는지
아냐? 세 살은 돼야 엄마를 똑바로 찾거든.
농사도 삼 년은 부쳐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며
이 빠진 옥수수 잠꼬대 소리가 들리지.
시 깜냥이 어깨너머에 납작하니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너를 엄마! 하고 부를 때까지
그냥 모르쇠하며 같이 사는 겨.
세쌍둥이 네쌍둥이 한꺼번에 둘러업고
젖 준 놈 또 주고 굶긴 놈 또 굶기지 말고.
시답잖았던 녀석이 엄마! 잇몸 내보이며
웃을 때까지. *

 

* 머리 경작 -어머니학교14

공부도 농사도 때가 있어.

콧구멍에 풋대추 들이밀어서

안 들어가면, 그해 모내기는 끝난 거여.

웃자란 모춤을 작두질해서 호미모 심고

지극정성으로 물 퍼 날라도 여물로나 쓸 뿐 나락은 못 봐.

공부도 매한가지여, 콧구멍 커져서 더운 바람 들어가면

머리통이 마른 논바닥 꼴이 돼놔서 글 경작은 끝장이여.

구멍에 박았다 뺐다, 애먼 풋대추만 꼴리지. *

 

* 몸과 맘을 다 -어머니학교15

장독 뚜껑 열 때마다

항아리 속 묵은 시간에다 인사하지.

된장 고추장이 얼마나 제맛에 골똘한지

손가락 찔러 맛보지 않고는 못 배기지.

술 항아리 본 적 있을 거다.

서로 응원하느라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입술들.

장맛 술맛도 그렇게 있는 힘 다해 저를 만들어가는데,

글 쓰고 애들 가르치는 사람은 말해 뭣 하겄냐?

그저 몸과 맘을 다 쏟아야 한다.

무른 속살 파먹는 복숭아벌레처럼

턱만 주억거리지 말고. *

 

* 그믐달 -어머니학교18

가로등 밑 들깨는

올해도 쭉정이란다.

쉴 틈이 없었던 거지.

너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여.

지나고 봐라. 사람도

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

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

그믐 없었던 보름달 없지.

어둠은 지나가는 거란다.

어떤 세상이 맨날

보름달만 있겄냐?

몸만 성하면 쓴다. *

 

* 그믐달 -어머니학교18

허물없는 사람 어디 있겄냐?

내 잘못이라고 혼잣말 되뇌며 살아야 한다.

교회나 절간에 골백번 가는 것보다

동네 어르신께 문안 여쭙고 어미 한 번 더 보는 게 나은 거다.

저 혼자 웬 산 다 넘으려 나대지 말고 말이여.

어미가 이런저런 참견만 느는구나.

늙을수록 고양이 똥구멍처럼 마음이 쪼그라들어서

한숨을 말끔하게 내몰질 못해서 그려.

뒤주에서 인심 나는 법인데

가슴팍에다 근심곳간 들인 지 오래다 보니

사람한테나 허공한테나 걱정거리만 내뱉게 되여.

바닥까지 두레박을 내리지 못하니께

가슴 밑바닥에 어둠만 출렁거리는 거지.

샘을 덮은 우덜거지를 열고 들여다봐라.

하늘 넓은 거, 그게 다 먹구름 쌓였던 자리다.

어미 가슴 우물이야, 말해 뭣 하겄어.

대숲처럼 바람 소리만 스산해야. *

 

* 이정록시집[어머니학교]-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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