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어머니학교10 - 이정록
시란 거 말이다
내가 볼 때, 그거
업은 애기 삼 년 찾기다.
업은 애기를 왜 삼 년이나 찾는지
아냐? 세 살은 돼야 엄마를 똑바로 찾거든.
농사도 삼 년은 부쳐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며
이 빠진 옥수수 잠꼬대 소리가 들리지.
시 깜냥이 어깨너머에 납작하니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너를 엄마! 하고 부를 때까지
그냥 모르쇠하며 같이 사는 겨.
세쌍둥이 네쌍둥이 한꺼번에 둘러업고
젖 준 놈 또 주고 굶긴 놈 또 굶기지 말고.
시답잖았던 녀석이 엄마! 잇몸 내보이며
웃을 때까지. *
* 머리 경작 -어머니학교14
공부도 농사도 때가 있어.
콧구멍에 풋대추 들이밀어서
안 들어가면, 그해 모내기는 끝난 거여.
웃자란 모춤을 작두질해서 호미모 심고
지극정성으로 물 퍼 날라도 여물로나 쓸 뿐 나락은 못 봐.
공부도 매한가지여, 콧구멍 커져서 더운 바람 들어가면
머리통이 마른 논바닥 꼴이 돼놔서 글 경작은 끝장이여.
콧구멍에 박았다 뺐다, 애먼 풋대추만 꼴리지. *
* 몸과 맘을 다 -어머니학교15
장독 뚜껑 열 때마다
항아리 속 묵은 시간에다 인사하지.
된장 고추장이 얼마나 제맛에 골똘한지
손가락 찔러 맛보지 않고는 못 배기지.
술 항아리 본 적 있을 거다.
서로 응원하느라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입술들.
장맛 술맛도 그렇게 있는 힘 다해 저를 만들어가는데,
글 쓰고 애들 가르치는 사람은 말해 뭣 하겄냐?
그저 몸과 맘을 다 쏟아야 한다.
무른 속살 파먹는 복숭아벌레처럼
턱만 주억거리지 말고. *
* 그믐달 -어머니학교18
가로등 밑 들깨는
올해도 쭉정이란다.
쉴 틈이 없었던 거지.
너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여.
지나고 봐라. 사람도
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
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
그믐 없었던 보름달 없지.
어둠은 지나가는 거란다.
어떤 세상이 맨날
보름달만 있겄냐?
몸만 성하면 쓴다. *
* 그믐달 -어머니학교18
허물없는 사람 어디 있겄냐?
내 잘못이라고 혼잣말 되뇌며 살아야 한다.
교회나 절간에 골백번 가는 것보다
동네 어르신께 문안 여쭙고 어미 한 번 더 보는 게 나은 거다.
저 혼자 웬 산 다 넘으려 나대지 말고 말이여.
어미가 이런저런 참견만 느는구나.
늙을수록 고양이 똥구멍처럼 마음이 쪼그라들어서
한숨을 말끔하게 내몰질 못해서 그려.
뒤주에서 인심 나는 법인데
가슴팍에다 근심곳간 들인 지 오래다 보니
사람한테나 허공한테나 걱정거리만 내뱉게 되여.
바닥까지 두레박을 내리지 못하니께
가슴 밑바닥에 어둠만 출렁거리는 거지.
샘을 덮은 우덜거지를 열고 들여다봐라.
하늘 넓은 거, 그게 다 먹구름 쌓였던 자리다.
어미 가슴 우물이야, 말해 뭣 하겄어.
대숲처럼 바람 소리만 스산해야. *
* 이정록시집[어머니학교]-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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