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새벽에 용서를 - 김재진

효림♡ 2012. 12. 29. 15:20

* 새벽에 용서를 - 김재진 
그대에게 보낸 말들이 그대를 다치게 했음을.
그대에게 보낸 침묵이 서로를 문 닫게 했음을.
내 안에 숨죽인 그 힘든 세월이
한 번도 그대를 어루만지지 못했음을. *

 

* 토닥토닥

나는 너를 토닥거리고
너는 나를 토닥거린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너는 자꾸 괜찮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
너는 자꾸 토닥거린다.
나도 자꾸 토닥거린다.
다 지나간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토닥거리다가 잠든다. *

 

* 만남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통째로 그 사람의 생애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아픔과, 그가 가진 그리움과

남아 있는 상처를 한꺼번에 만나기 때문이다. *

 

* 다시 누군가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사랑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햇볕과 그 사람의 그늘을
분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두운 밤 나란히 걷는 발자국 소리 같아
멀어져도 도란도란
가지런한 숨결 따라 걸어가는 것이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픔 속에 가려 있는 기쁨을 찾아내는 것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새 바람 들여놓듯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 치유 

나의 치유는

너다.

달이 구름을 빠져나가듯

나는 네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는 내게 그 모든 것이다.

모든 치유는 온전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아무것도 아니기에 나는

그 모두였고

내가 꿈꾸지 못한 너는 나의

하나뿐인 치유다. *

 

* 선운사 동백

꽃 떨어져 눈에 밟힐 때

선운사 가지 마라.

가는 길이 맘에 밟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다 해도

동백 떨어져 세상이 다 숨 가쁠 때

선운사 가지 마라.

사람에게 다친 마음 일어나

앉아도 누워도 일어나기만 해

숨 한 번 몰아쉬기 힘들어질 때

운사 가려거든 그렇게

가더라도 나 없을 때 가라.

나 아닌 나는 몰래 떼어놓고

가더라도 혼자 가서

밀어둔 눈물 은근 적시고 오라. *

 

* 낙산을 걷다

생이 아플 무렵 낙산을 걷는다.
조금 헐렁한 신발과 멀리 있는 그리움과
걷다가 자주 쉬는 약한 무릎 데리고
시린 이빨같이 생이 흔들리는 날
낙산을 걷는다.
물들어도 물들지 않는 내 안의 잎들과
끝내 안아보지 못한 슬픈 어깨와
적막이 깊어 더 내려가지 못한
돌층계 밟으며 외로움 따라 밟는다.
디딜 때마다 끌려오는
생의 무게와
남아 있는 길의 남아 있지 않은 위안과
어둠의 등 뒤에 누가 있는지
고요의 그림자가 성보다 크다. *

 

김재진시집[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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