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에 용서를 - 김재진
그대에게 보낸 말들이 그대를 다치게 했음을.
그대에게 보낸 침묵이 서로를 문 닫게 했음을.
내 안에 숨죽인 그 힘든 세월이
한 번도 그대를 어루만지지 못했음을. *
* 토닥토닥
나는 너를 토닥거리고
너는 나를 토닥거린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너는 자꾸 괜찮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
너는 자꾸 토닥거린다.
나도 자꾸 토닥거린다.
다 지나간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토닥거리다가 잠든다. *
* 만남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통째로 그 사람의 생애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아픔과, 그가 가진 그리움과
남아 있는 상처를 한꺼번에 만나기 때문이다. *
* 다시 누군가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사랑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햇볕과 그 사람의 그늘을
분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두운 밤 나란히 걷는 발자국 소리 같아
멀어져도 도란도란
가지런한 숨결 따라 걸어가는 것이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픔 속에 가려 있는 기쁨을 찾아내는 것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새 바람 들여놓듯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 치유
나의 치유는
너다.
달이 구름을 빠져나가듯
나는 네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는 내게 그 모든 것이다.
모든 치유는 온전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아무것도 아니기에 나는
그 모두였고
내가 꿈꾸지 못한 너는 나의
하나뿐인 치유다. *
* 선운사 동백
꽃 떨어져 눈에 밟힐 때
선운사 가지 마라.
가는 길이 맘에 밟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다 해도
동백 떨어져 세상이 다 숨 가쁠 때
선운사 가지 마라.
사람에게 다친 마음 일어나
앉아도 누워도 일어나기만 해
숨 한 번 몰아쉬기 힘들어질 때
선운사 가려거든 그렇게
가더라도 나 없을 때 가라.
나 아닌 나는 몰래 떼어놓고
가더라도 혼자 가서
밀어둔 눈물 은근 적시고 오라. *
* 낙산을 걷다
* 김재진시집[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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