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곰아 곰아 - 진동규

효림♡ 2013. 4. 15. 08:57

* 곰아 곰아 - 진동규 

   다람쥐는 곰이 걱정이다 무엇을 따라한다는 것부터 문제였다 이것저것 마구 먹어치울 때부터 무슨 사단이 나지 싶었다

백일 금식 참회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문제다

   도토리 하나 받들고 찾아가보았다 햇빛 달빛 한 솔기 들지 않는 바위 굴속 눈도 뜨지 않았다 물도 먹지 않았다

   미련하게 바위보다 힘이 센 것부터가 보기 싫지만 하는 수 없다 모아둔 갈참나무 도토리 창고를 헐었다

힘들지만 묵을 쑤고 묵국수를 만들었다 가지 끝에 감긴 바람이 국수 말리는 일을 도왔다

다람쥐야 오독오독 방아나 찧었지만 올깃쫄깃 맛은 밤새워 흐르던 물소리가 도왔다

   긴 잠에서 깨어나는 날, 고로쇠나무 등걸을 죽죽 긁어대는 날 고로쇠물에 말아내는 묵국수 해장국

   달라붙은 속 함께 달래자 곰아 * 

 

* 백제금동대향로

코스모스가 잠자리 날개옷을 빌려 입었다 지평선 축제에 가려나 보다

 

황금이 언덕처럼 쌓였다던 지모밀 옛날에도 이랬던가 보다 지평선 끝까지 넘실거리는 황금빛

서동이 지은 노랫가락 선화공주는 남방 담로의 배소 완함을 즐겨 탔다지?

북소리 피리 소리 뒤따르며 악사들이 오른쪽 머리를 매만지며 나온다

 

억새가 은빛 햇살로 모자를 접어 가마에 씌워준다

선화랑 함께 편지를 끝낸 마동이 젯등을 넘으려는 것이지

노을을 사르고 따라나서는 허수아비 몇 붉다 *

 

* 배소 -남방의 악기로 대나무를 잘라 만든 관악기. 백제금동대향로에 새겨져 있다.

* 완함 -남방의 악기로 현악기. 백제금동대향로에 새겨져 있다.

* 젯등 -완주군 제내리 소재 언덕. 황제가 와서 춤을 추었다는 낮은 언덕.

 

* 고도리 부처님 말씀 

고도리 돌 부부상, 섣달그믐 지척 분간 없이 다 지우는 눈보라 속에서 만나는 백제 부부를 역사책은 부부라 적지 않고

'부처님 가운데쯤'이라고 했다는데 언젠가 그들이 말문을 여는 날이면 그것이 부처님 말씀이라는 것.

 

어렴풋이 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산둥반도 말씀도 같고, 요동 땅 걱정도 같고, 대마도 사투리쯤의 그림자도 없는

 

'입추운ㅡ' 하면서 허리를 굽히고 생강나무꽃 살피는 걸 보았다고도, '입추우ㅡ' 하면서 말복날 바람 한 채반

뒤적거리는 것 똑똑히 보았다고도, 부처님 가운데쯤으로가 아니라 입술이 터져라 부비더라는 숭헌 소문에 이른 것

 

때가 이르렀다 어둠을 나누고 떡을 나누었다 살을 나누었다 징그러운 종살이도 나누었다 *

 

* 보리밭

겨울을 감 잡아내는 보리밭

 

얼었다 녹고 헐어 부풀어 오른 땅
지그시 밟아 부스럼 같은 것들
가만가만 땅바닥에 다독인다

 

땅 맛을, 땅 맛을 알아야 하지

 

발등을 덮어오는 황토 부풀었던 것들
보리밭에 보릿대로 나를 세운다

 

덧나지 말아야지, 잔등을 넘어
푸른 이내 마을로 내린다 *

 

* 감나무 시

달빛 듬뿍 찍어

창호지에 물오른 감나무 가지 

 

감꽃 떨어지던 봄밤의

바람 감기던 거기

가지째 뚝 끊어지는데

익어가는 진양조의 오리발 시리게 누르고

기러기 몇, 하늘에 그림자를 새긴다 

 

먹을 갈아 갈아

깊어가는 밤 추적추적 걷어다가

까맣게 굵어지는 감나무 * 

 

* 진동규시집[곰아 곰아]-문지

 

* 진동규시인

-1945년 전북 고창 출생

-1978년 [시와 의식]을 통해 등단.

-시집 [꿈에 쫓기며][민들레야 민들레야][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곰아 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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