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한 외면 - 복효근
비를 그으려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가
나뭇잎 뒤에 매달려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
나비 쪽을 외면하는
늦은 오후 *
* 타이어의 못을 뽑고
사랑했노라고 그땐
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너를 찾아
고백하고도 싶었다
ㅡ그것은 너나 나의 가슴에서 못을 뽑아버리고자 하는 일
그러나 타이어에 박힌 못을 함부로
잡아 뽑아버리고서 알았다
빼는 그 순간 피식피식 바람이 새어 나가
차는 주저앉고 만다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
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둔 채
정비소로 가든지 폐차장으로 가든지
갈 데까지는 가는 것
갈 때까지는 가야 하는 것
치유를 꿈꾸지 않는 것
꿈꾼대도 결국 치유되지 않을 것이므로
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는 것
때론 대못이
대못 같은 것이
생이 새어 나가지 않게 그러쥐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
* 폭포
직하(直下)*라커니
곧은 소리*라커니 하지만
물줄기는 주춤대다 망설이다
휘어져 떨어지기도 한다
지사형의 수직도 좋지만
나는 저 인간적인 휘어짐이 좋다
큰 줄기 곁에는
작은 줄기들의 작은 소리들
불평하듯 탓하고 욕하듯
중얼거리듯 한탄하듯 흥얼거기듯
소(沼)에 떨어지기도 전에
물방울로 흩어져 어지러운
어지러운 소리들이
무지개를 걸어놓기도 한다
두려움에 떨며
떨다가 질끈 눈 감고 뛰어내리는
저 작은 물줄기들의 투신에
폭포는 비로소 장엄 폭포가 된다 *
*이백[망여산폭포]
**김수영[폭포]
* 멀리서 받아 적다
국화 마른 대궁을 베어버리려 낫을 들이대니
시들어 마른 꽃 무더기에서
뭉클한 향기 진동하다
서리 몇 됫박 뒤집어쓰고
잎부터 오그라들 적에
오상고절도 어쩔 수 없구나 했더니
아서라 시취(屍臭)까지 향기로 바꾸어내는 고집
그 꽃다운 오만 앞에서 낫을 거두다
안도하듯 다시 뱁새 몇 마리
그 그늘 아래 찾아들고
하, 고것들의 수작이라니
밤새 서설이 내려 꽃을 새로 피우다
애초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었다 *
* 복효근시집[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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