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따뜻한 외면 - 복효근

효림♡ 2013. 4. 15. 08:58

* 따뜻한 외면 - 복효근

비를 그으려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가
나뭇잎 뒤에 매달려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
나비 쪽을 외면하는
늦은 오후 *

 

* 타이어의 못을 뽑고

사랑했노라고 그땐

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너를 찾아

고백하고도 싶었다


ㅡ그것은 너나 나의 가슴에서 못을 뽑아버리고자 하는 일


그러나 타이어에 박힌 못을 함부로

잡아 뽑아버리고서 알았다

빼는 그 순간 피식피식 바람이 새어 나가

차는 주저앉고 만다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

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둔 채

정비소로 가든지 폐차장으로 가든지

갈 데까지는 가는 것

갈 때까지는 가야 하는 것

치유를 꿈꾸지 않는 것

꿈꾼대도 결국 치유되지 않을 것이므로

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는 것

 

때론 대못이

대못 같은 것이

생이 새어 나가지 않게 그러쥐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

 

* 폭포

직하(直下)*라커니

곧은 소리*라커니 하지만

물줄기는 주춤대다 망설이다

휘어져 떨어지기도 한다

지사형의 수직도 좋지만

나는 저 인간적인 휘어짐이 좋다

큰 줄기 곁에는

작은 줄기들의 작은 소리들

불평하듯 탓하고 욕하듯

중얼거리듯 한탄하듯 흥얼거기듯

소(沼)에 떨어지기도 전에

물방울로 흩어져 어지러운
어지러운 소리들이
무지개를 걸어놓기도 한다
두려움에 떨며
떨다가 질끈 눈 감고 뛰어내리는
저 작은 물줄기들의 투신에
폭포는 비로소 장엄 폭포가 된다 *

*이백[망여산폭포]
**김수영[폭포]

 

* 멀리서 받아 적다 
국화 마른 대궁을 베어버리려 낫을 들이대니
시들어 마른 꽃 무더기에서
뭉클한 향기 진동하다

서리 몇 됫박 뒤집어쓰고
잎부터 오그라들 적에
오상고절도 어쩔 수 없구나 했더니
아서라 시취(屍臭)까지 향기로 바꾸어내는 고집
그 꽃다운 오만 앞에서 낫을 거두다

안도하듯 다시 뱁새 몇 마리
그 그늘 아래 찾아들고
하, 고것들의 수작이라니
밤새 서설이 내려 꽃을 새로 피우다

애초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었다 *

 

* 복효근시집[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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