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장자(莊子) - 고형렬

효림♡ 2013. 8. 19. 08:31

* 장자(莊子) - 고형렬

 

바다 속에는 화채봉(華彩峯)이 있다.

바다를 들면 같이 늙어가는 소년을 만난다. 비가 오다가 금색 노을이 가득한 화채봉, 밀랍향기 아득히 해가 진다.

바다 속에는 해가 지는 집이 있다.

산호숲을 지나서 어머님 고운 관(棺)의 물결무늬 그리는 그곳에서 파도치는 아침, 고향이 있다.

바람을 따라 너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다면 서쪽으로 가거라.

선정사(禪定寺) 곱게 단청 날고 단풍 지는 가을로 5, 60년 떠나면, 같은 세월이 날아갈 듯 흐른다.

그 몸에도 마음이 있어서 숨을 헤쳐내는 전생의 아침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가 울고 싶다.

섬기린초(麒麟草) 피는 설악산 미명(未明)이 흐르는 입구,

두 번째 노란 꽃잎 밑으로 돌아오면, 흰 제비옥잠 지는 길에서 만나는 바다가 출렁인다.

줄을 당기며 당기며 어머니 음곡(陰谷)으로

몸부림치던 소년, 세상에 몸 버리지, 선홍빛 해와 달 넘기지.

낚시에 걸린 새들이 절망하는 꿈의 해변

눈치 챈 누가 밤 자갈을 밟으며 꿈 밖에서 돌고 있다.

멀리서 깜박거리는 나의 생가(生家), 영마루 이른 새벽 이슬 젖어 그 호롱불 책상에 졸고 있는데,

어머님이 산에서 나를 불렀다.

지금까지 달고 다닌 탯줄을 끊어버리고, 개울에서

혼자 피 흘리며 아픈 길을 묶을 때,

솔쟁이꽃 환한 연봉(連峰)으로 달은 지고

꽃창포 터진 아침 물결로 흘러가고

떠나던 서산 어깨로 노을이 피어오른다.

어머님, 저는 이제 바다 속에 살고 있는 나를 그리워하며

철썩이는 해안에서 시달립니다.

영원히 타고 있을 까만 화채봉.

말라붙은 나의 배꼽을 만지면

내 어머니 어디선가 흙이 되어 있으리.

나를 다시 잉태(孕胎)하여 달라고 아주 착하게 장자(莊子)는 그때부터 울고 있었다.

해 떨어지던 천공(天空)의 산 앞에

바람소리 들리던

집만 비어 있고.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0) 2013.08.19
행복 - 이정록   (0) 2013.08.19
몽유백령도(夢遊白翎圖) - 정희성   (0) 2013.08.19
추삼제(秋三題) - 이희승  (0) 2013.07.22
천천히 가는 시계 - 나태주  (0) 2013.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