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삼제(秋三題) - 이희승
- 벽공(碧空)
손톱으로 툭 튀기면
쨍하고 금이 갈듯.
새파랗게 고인 물이
만지면 출렁일 듯.
저렇게 청정무구(淸淨無垢)를
드리우고 있건만
- 낙엽
시간에 매달려
사색에 지친 몸이
정적(靜寂)을 타고 내려
대지에 앉아보니
공간을 바꾼 탓인가
방랑길이 멀구나
- 남창(南窓)
햇살이 쏟아져서 창에 서려 스며드니
동공(瞳孔)이 부시도록 머릿속이 쇄락해라
이렇게 명창청복(明窓淸福)을 분에 겹게 누림은
* 세월(歲月)
꽃 피듯 다가와서 잎이 지듯 가는 세월
책장을 넘기듯이 겹겹이 쌓인 세월
부피도 있을 법 하건만 두깨조차 없어라
샘 솟듯 새어나와 어디론가 흘러가네
꽃길만 여겼더니 가시덤불 투성일세
속다가 다시 속다가 파랑새만 날리고
갈피갈피 적힌 사연
배 지나간 자취로세
더듬어 만지려도
구름잡힌 셈이로세
따돌림 당하고 나면
허공이나 밟을까.
* 이희승(1896~1989)
-경기도 광주 출생. 국어학자. 호는 일석(一石).
-시집 [박꽃][심장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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