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천천히 가는 시계 - 나태주

효림♡ 2013. 7. 18. 17:07

* 천천히 가는 시계 - 나태주 


천천히, 천천히 가는
시계를 하나 가지고 싶다

수탉이 길게, 길게 울어서
아, 아침 먹을 때가 되었구나 생각을 하고
뻐꾸기가 재게, 재게 울어서
어, 점심 먹을 때가 지나갔군 느끼게 되고
부엉이가 느리게, 느리게 울어서
으흠, 저녁밥 지을 때가 되었군 깨닫게 되는
새의 울음 소리로만 돌아가는 시계

나팔꽃이 피어서
날이 밝은 것을 알고 또
연꽃이 피어서 해가 높이 뜬 것을 알고
분꽃이 피어서 구름 낀 날에도
해가 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꽃의 향기로만 돌아가는 시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가고
시도 쓸 만큼 써보았으니
나도 인제는, 천천히 돌아가는
시계 하나쯤 내 몸 속에
기르고 싶다.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몽유백령도(夢遊白翎圖) - 정희성   (0) 2013.08.19
추삼제(秋三題) - 이희승  (0) 2013.07.22
팔만대장족경 - 유홍준   (0) 2013.07.17
외딴집 대추나무 - 권정생   (0) 2013.07.17
황홀한 국수 - 고영민   (0) 2013.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