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행시초(南行詩抄) 1 -창원도(昌原道) - 백석
솔포기에 숨었다
토끼나 꿩을 놀래 주고 싶은 산허리의 길은
엎데서 따스하니 손 녹이고 싶은 길이다
개 데리고 호이호이 휘파람 불며
시름 놓고 가고 싶은 길이다
괴나리봇짐 벗고 땅불 놓고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은 길이다
승냥이 줄레줄레 달고 가며
덕신덕신 이야기하고 싶은 길이다
떠꺼머리총각은 정든 님 업고 오고싶은 길이다 *
* 남행시초(南行詩抄) 2 -통영
통영 장 낫대들었다
갓 한 닢 쓰고 건시 한 접 사고 홍공단 단기 한 감 끊고 술 한 병 받아 들고
화륜선 만져 보려 선창 갔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 앞에
문둥이 품바타령 듣다가
열이레 달이 올라서
나룻배 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 서병직(徐丙稷)씨에게- *
낫대들었다:내달아 들어갔다
홍공단:붉은 빛깔에 윤기가 나는 비단
* 남행시초(南行詩抄) 3 -고성가도(固城街道)
고성장 가는 길
해는 둥둥 높고
개 하나 얼린하지 않는 마을은
해바른 마당귀에 맷방석 하나
빨갛고 노랗고
눈이 시울은 곱기도 한 건반밥
아 진달래 개나리 한창 피었구나
가까이 잔치가 있어서
곱디 고운 건반밥을 말리우는 마을은
얼마나 즐거운 마을인가
어쩐지 당홍치마 노란 저고리 입은 새악시들이
웃고 살을 것만 같은 마을이다 *
얼린하지 않는:어른거리지 않는
눈이 시울은:눈이 부신
* 남행시초(南行詩抄) 4 -삼천포
졸레졸레 도야지 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런 사람들이 둘러서서
어느 눈 오신 날 눈을 치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러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두들 따사로이 가난하니 *
* 백석시집[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휴먼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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