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물에게 길을 묻다 - 천양희

효림♡ 2013. 10. 10. 11:00

* 물에게 길을 묻다 -수초들 - 천양희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물속에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물속에서 물만 먹고 살았지요
물먹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물보라는 길게 물을 뿜어 올리고
물결은 출렁대며 소용돌이 쳤지요
누가 돌을 던지기라도 하면
파문은 나에게까지 번졌지요  

물소리 바뀌고 물살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웅덩이속 송사리떼를 생각했지요
연어떼들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물가의 잡초들을 힐끗 보았지요
눈비에 젖고 바람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生도 물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건 물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물먹고 산다는 것은 물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물먹고 살수록 삶은 더 파도쳤지요
오늘도 나는 물속에서 자맥질하지요
물같이 흐르고 싶어, 흘러가고 싶어  

*上善若水(상선약수) -도덕경 8장

 

* 물에게 길을 묻다 2 -참는다는 것

세상의 행동중에 참는게 제일이라*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무슨일이든 참기로 했지요
날마다 참으면서 일만 하고 살았지요
참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살 길은 갈수록 구불텅거리고
살림은 출렁대며 흔들렸지요
누가 고해(苦海)속에 뛰어들기라도 하면
파문은 나에게까지 번졌지요
그때 나는 절벽에 매달려 사는 가마우지 새들을 생각했지요
둥지없는 무소새를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문득 길가의 무명초들을 힐끗 보았지요
발밑에 밟히고 바람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일 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참으면서 사는 일이었지요
그때서야 힘든것이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힘들게 산다는 것은 힘쓰고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참고 살수록 삶은 더 굽이쳤지요
오늘도 나는 인파속에서 자맥질하지요
힘껏 살고 싶어 힘내고 싶어

* 명심보감의 한 구절

 

* 물에게 길을 묻다 3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지요
날마다 살기 위해 일만 하고 살았지요
일만하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요
일터는 오래 바람 잘 날 없고
인파는 술렁이며 소용돌이쳤지요
누가 목소리를 높이기라도 하면
소리는 나에게까지 울렸지요
일자리 바뀌고 삶은 또 솟구쳤지요
그때 나는 지하 속 노숙자들을 생각했지요
실직자들을 떠올리로 했지요
그러다 문득 길가의 취객들을 힐끗 보았지요
어둠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생도 똑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사람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사람으로 살수록 삶은 더 붐볐지요
오늘도 나는 사람 속에서 아우성치지요
사람같이 살고 싶어, 살아가고 싶어 *

* [열자(列子)의 '천서(天瑞)'편에서

* 천양희시집[너무 많은 입]-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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