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눈 오는 날에 - 조지훈

효림♡ 2014. 1. 3. 08:30

* 눈 오는 날에 - 조지훈

 

검정 수목 두루마기에

흰 동정 달아 입고

창에 기대면

 

박넌출 상기 남은

기울은 울타리 위로 장독대 위로

새하얀 눈이

나려 쌓인다

 

홀로 지니던 값진 보람과

빛나는 자랑을 모조리 불사르고

소슬한 바람 속에

낙엽(落葉)처럼 무념(無念)히 썩어가면은

 

이 허망(虛妄)한 시공(時空) 위에

내 외로운 영혼 가까이

꽃다발처럼 꽃다발처럼

하이얀 눈발이

나려 쌓인다

 

마음 이리 고요한 날은

아련히 들려오는

서라벌 천년(千年)의 풀피리 소리

 

비애(悲哀)로 하여 내 혼이 야위기에는

절망(絶望)이란 오히려

나리는 눈처럼 포근하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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