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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 김명인

효림♡ 2014. 5. 1. 17:20

* 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 김명인 

 

철썩이며 부서지는 파도의 실패들

감았다 풀었다 되감는

이것을 놀이라 할까?

태곳적부터 펼쳐놓은 실마리니

파도는 써버릴 무료 무진장 남아 있다

넘볼 수 없는 해발의 아득한 넓이

푸르둥둥한 걸신들이 저녁을 끌고 온다

가장 낮은 현을 건드리는 고요

내가 못 견디는 쓰라림

나 혼자 맛보려니, 사람아

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어림잡아 그대는 일만 리 밖에 서고

나는 한 육십 리쯤에 그대를 당겨놓고

차감하니 수평 너머에 뜨는 불빛

까마득하여 분간이 안 되는 그 불빛으로

꽝꽝 언 마음 녹이느니

이 어로(漁撈) 얼어붙은 겨울 밤바다가 일찍 잠근다

결심은 거추장스럽고 너무 많은 어둠 밀려와

파도는 파도 소리밖에 업을 줄 모른다  

* 김명인시집[여행자 나무]-문학과지성사

 

* 그리움 - 아이헨도르프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다.
나는 홀로 창가에 기대어
고요한 마을
멀리서 들리는 역마차 피리소리를 들었다.
어쩐지 가슴이 타오르듯 뜨거운
이렇게 아름다운 여름밤
저렇게 함께 여행할 사람이라도 있다면 좋겠네.
그런 생각을 슬쩍 하기도 했다.

젊은이 두 사람이
산비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노래하는 소리가
고요한 산자락을 따라 멀어져간다.
살랑살랑 속삭이는 숲을 맴돌고
현기증 나는 바윗길을 맴돌아
낭떠러지를 뚝 떨어져서
숲의 어두움 속에 사라지는 샘물을 맴돌고 간다.

그들은 대리석 조각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하게 우거진 갈퀴덩굴 속의
바위 있고 잔디밭 있는 정원과
달그림자에 떠오르는 궁전을 노래했다.
아름다운 여름밤
아가씨들이 그 창가에 기대어
아련한 샘물의 속삭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칠현금 소리 울리기를 기다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