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나비 - 김사인

효림♡ 2014. 5. 13. 20:22

* 나비 - 김사인 

 

오는 나비이네

그 등에 무엇일까

몰라 빈 집 마당켠

기운 한낮의 외로운 그늘 한 뼘일까

아기만 혼자 남아

먹다 흘린 밥알과 김칫국물

비어져나오는 울음일까

나오다 턱에 앞자락에 더께지는

땟국물 같은 울음일까

돌보는 이 없는 대낮을 지고 눈시린 적막 하나 지고

가는데, 대체

어디까지나 가나 나비

 

그 앞에 고요히

무릎 꿇고 싶은 날들 있었다 *

* 김사인시집[가만히 좋아하는]-창비

 

* 노랑나비 - 김사인 

 

내 벗은 어깨 위에

모양 없이 시든 오뉴월 흉년 꺽정 보릿대 위에

마른 쑥대 위에

보람 없는 여름 긴 한낮 위에

노랑나비

 

길가에 앉아 끝내 내 못 간다 사랑아

네 웃음 얼굴마저 이제 눈앞에 흐리고

고개 들면 쏟아지는 허연 살비듬

파란 하늘에 얼비치는 낯익은 사내 하나

길가에 앉아

 

굽은 어깨 위에

그리움의 녹슨 반쪽 거울 위에

짓무른 눈꺼풀 위에 눈물 위에

초라한 풀꽃의 늙은 이마 위에 덧없는 졸음 위에

노랑나비

* 김사인시집[밤에 쓰는 편지]-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