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청개구리와 민달팽이 - 이은봉

효림♡ 2014. 7. 3. 15:32

* 꾀꼬리 달 - 이은봉  

그래요 달은 깃털 샛노란 꾀꼬리지요
부리조차 샛노랗지요 달은
어두운 밤하늘 환하게 쪼아대다가
그만 지쳤나 봐요
우리 집 베란다에까지 날아와
플라스틱 창들을 쪼아대고 있네요
샛노란 깃털을 뽑아
주방 안에 자리를 펴는 것을 보면
달은 배가 고픈가 봐요
으음, 꾀꼴대는 소리가
꼬록대는 소리로 들리네요
베란다에서 저절로 크는
꽃사과의 자잘한 열매들에까지
부리 자국 또렷하네요
먼 하늘나라에서 날아와
내 가슴 콕콕 쪼아대는 꾀꼬리 달
이렇게 사랑 나누는 것이지요
꾀꼬리 달은 다리가 셋이군요
삼족오의 피를 받았나 봐요
그래요 달은 깃털 샛노란 꾀꼬리지요. *

 

* 초록 잎새들!

굴참나무 초록 잎새들 옹알이한다고?

고 어린것들 촐랑촐랑 말 배우기 시작한다고?

 

뭐라고? 벌써 입술 꼼지락대고 있다고?

조 작은 것들 마음 활짝 펴고 있다고?

 

그렇지 녀석들 환하게 웃을 때 되었지

고 예쁜 것들 깔깔대며 장난칠 때 되었지

 

그새 초여름 더운 바람 불고 있다고?

조 귀여운 것들 글씨 공부 꼬불꼬불 신난다고? *

 

* 청개구리와 민달팽이  

마곡사 선방 앞에 선다

자미나무 검붉은 꽃잎들 사이로

청개구리 한 마리 초싹대며 뛰어오른다

얼기설기 나무판자를 엮어 세운

선방 외짝 문 앞에는

숯과 고추를 끼워 만든

금줄 처져 있다 굵은

통대나무들 가로 뉘어 있다

'참선중입니다' 먹글씨 밑으로

엉금엉금 민달팽이 한 마리

기어가고 있다 촉수를 늘여

언젠가는 이 선방

죄 더듬으리라 마음 먹는 사이

오조조, 자미나무 꽃잎들

바람에 진다 민달팽이의 발원도

흙길 위로 진다 마곡사

지쳐 빠진 선방 앞

늙은 매화나무 등걸을 밟고

언젠가 나도 청개구리 한 마리로

초싹대며 뛰어오른 적 있다. *

 

* 서산 마애불 
억만년 바위 속에 갇혀 지내다가
불쑥 튀어나왔기에
마냥 좋아 헤벌쭉 웃고 있는 거니?

둥굴둥굴, 넓적넓적!

너무 오래 바위 속 묶여 살다가
제 집 툭 깨뜨리고
뛰쳐나온 손오공처럼?

아니니?그럼,저기 저팔계처럼?
삶은 도야지의 얼굴로
멋쩍게 웃고 있는 거니?

넓적넓적 둥굴둥굴!

윗입술, 사과빛으로 곱게 물들어!
아랫입술, 홍시빛으로 붉게 물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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