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각시붓꽃을 위한 연가 - 복효근

효림♡ 2015. 6. 12. 09:00

* 각시붓꽃을 위한 연가 - 복효근

 

각시가 따라나설까봐
오늘 산행길은 험할 텐데, 둘러대고는
서둘러 김밥 사들고 봄 산길 나섰습니다 
 
허리 낭창한 젊은 여자와 이 산길 걸어도 좋겠다 생각하며
그리 가파르지도 않은 산길 오르는데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산비알에
저기 저기 각시붓꽃 피어 있습니다
 
키가 작아서 허리가 어디 붙었나 가늠도 되지 않고
화장술도 서툴러서 촌스러운 때깔이며
장벽수정을 한대나 어쩐대나 암술 수술이 꽁꽁 감추어져
요염한 자태라곤 씻고 봐야 어디에도 없어서
벌 나비 하나 찾아주지 않는 꽃
 
세상에나, 우리 각시 여기까지 따라 나섰습니다
세상에 내가 최고로 잘 난 줄 아는 모양입니다
이 산길까지 남정네 감시하러
앵도라진 입술 쭈뼛거리며 마른 풀섶에 숨어 있습니다
각시붓꽃 앞에 서니 내 속생각 들킬까봐
아무도 없는 숲길에마저 괜스레 조신합니다
 
두렵게도 이쁜 꽃입니다
새삼 스무 살처럼 내가 깨끗합니다 *

 

* 복효근시집[목련꽃 브라자]-천년의시작,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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