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보살 - 김사인

효림♡ 2015. 6. 27. 15:44

* 보살 - 김사인
 
그냥 그 곁에만 있으믄 배도 안 고프고, 몇날을 나도 힘도 안 들고, 잠도 안 오고 팔다리도 개뿐허요. 그저 좋아 자꾸 콧노래가 난다요.
숟가락 건네주다 손만 한번 닿아도 온몸이 다 짜르르허요. 잘 있는 신발이라도 다시 놓아주고 싶고, 양말도 한번 더 빨아놓고 싶고, 흐트러진 뒷머리칼 몇올도 바로 해주고 싶어 애가 씌인다요. 거기가 고개를 숙이고만 가도, 뭔 일이 있는가 가슴이 철렁허요. 좀 웃는가 싶으면, 세상이 봄날같이 환해져라우. 그길로 그만 죽어도 좋을 것 같어녀라우. 남들 모르게 밥도 허고 빨래도 허고 절도 함시러, 이렇게 곁에서 한 세월 지났으믄 혀라우. *

 

* 김사인시집[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2015

 

* 보살 - 고재종

 

기역 자로 굽은 허리로
유모차를 밀던 할머니,
오늘은 작은 호박덩이로 말아져
유모차 위에 앉혀졌다
그걸 기역 자로 굽어가는 허리로
이웃집 할머니가 다시 미는
돌담과 돌담 사이
잠시 하느님도 망각한 고샅길에선
누구도 시간을 묻지 않는다
참새 한 마리도 외로운지
딱딱한 것들의 목록뿐인
할머니의 어깨에 살폿 내려와 앉는
저 꿈같은 일에
아기처럼 웃는 할머니의 미소에
누구도 값을 매기지 않는다
다만 동구 밖 느티나무 잎들은
아무것도 원함이 없는
할머니들의 요요적적에 대해서
설(說)함이 없이 설하고
느티나무 아래 벌써
풍경이 되어버린 할머니들은
아무것도 들음이 없이 다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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