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바다와 나비 - 김기림

효림♡ 2015. 8. 10. 08:30

*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 봄

사월은 게으른 표범처럼 

인제사 잠이 깼다 

눈이 부시다 

가려웁다 

소름친다 

등을 살린다 

주춤거린다 

성큼 겨울을 뛰어 넘는다 *

 

* 길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

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

 

* 기차

모닥불의 붉음을

죽음보다도 더 사랑하는 금벌레처럼

기차는

노을이 타는 서쪽 하늘 밑으로 빨려갑니다. *

 

* 유리창 
여보
내 마음은 유린가 봐 겨울 하늘처럼
이처럼 작은 한숨에도 흐려버리니.....

만지면 무쇠같이 굳은 체하더니
하룻밤 찬 서리에도 금이 갔구려

눈포래 부는 날은 소리치고 우오.
밤이 물러간 뒤면 온 뺨에 눈물이 어리오.

타지 못하는 정열 박쥐들의 등대
밤마다 날아가는 별들이 부러워 쳐다보며 밝히오

여보
내 마음은 유린가 봐
달빛에도 이렇게 부서지니 *

 

* 김기림시집[바다와나비]-시인생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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