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장미는 손님처럼 - 문성해

효림♡ 2015. 7. 5. 08:30

* 장미는 손님처럼 - 문성해 

 

어느새 파장 분위기로 술렁거리는 장미원에

올해도 어김없이 장미가 다니고 가신다

한번 다니러 오면 한 생애가 져버리는 우리네처럼

이승이란 있는 것 다 털고 가야 하는 곳이라서

꽃술과 꽃잎을 다 털리고 가는 저 꽃들

그래도 말똥구리로 굴러도 이승이 좋은 곳이라고

빨간 입술의 늙은 여자들이 양산을 들고 그 사이로 걸어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다니러 오셨는가

목책을 붙잡고 말라빠진 덩굴장미 한 송이 안간힘으로 피어있다

다시 한 생애가 오기까지

다시 이 불가해한 시간대에 얼굴을 달고 태어나기까지는

영겁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다니고 가는 것들로 북적대는 장미원에는

함부로 늙어가는 꽃들

함부로 늙어가는 여자들이 지천에 가득하고

젊은 남자가 서너 살은 되어 보이는 딸아이를 꽃 속에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어서어서 커야지 할 새도 없이

봄여름을 알 수 없는 계절이

함부로 뭉쳐져서 빠르게 몰려오고 있다 *

 

* 여름꽃들 - 문성해

 

사는 일이 강퍅하여

우리도 가끔씩 살짝 돌아버릴 때가 있지만

그래서 머릿골 속에 조금 맺힌 꽃봉오리가

새벽달도 뜨기 전에 아주 시들어버리기도 하지만

부용화나 능소화나 목백일홍 같은 것들은

속내 같은 거 우회로 같은 거 은유 같은 거 빌리지 않고

정면으로 핀다

그래 나 미쳤다고 솔직하게 핀다

한바탕 눈이 뒤집어진 게지

심장이 발광하여 피가 역류한 거지

거참, 풍성하다 싶어 만질라치면

꽂은 것들을 몽땅 뽑아버리고 내뺄 것 같은

예측 불허의

파문 같은

폭염 같은

깔깔거림이

작년의 광증이 재발하였다고

파랗게 머리에 용접 불꽃이 인다고

불쑥불쑥 병동을 뛰쳐나온 목젖 속에

소복하게 나방의 분가루가 쌓이는 7월이다 *

 

* 문성해시집[아주 친근한 소용돌이]-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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