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 서정주

효림♡ 2015. 9. 24. 09:00

*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 서정주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어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에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어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

 

* 송편 - 최병엽 

보송보송한 쌀가루로

하얀 달을 빚는다

한가위 보름달을 빚는다

풍년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하늘 신과 땅 신께

고수레, 고수레~하고

햇솔잎에 자르르 쪄낸

달을 먹는다

쫄깃쫄깃한

하얀 보름달을 먹는다. *

 

* 고야(古夜) - 백석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산(山)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 뒤로는 어느 산(山)골짜기에서 소를 잡아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 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 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산(山) 어느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 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 속에 자즈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고무가 고개 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삿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어 다람쥐처럼 밝어 먹고 은행 여름을 인두불에 구워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위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누워 굴면서 엄매에게 웃목에 두른 병풍의 새빨간 천두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메추라기를 잡아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 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 손이 되어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섣달에 냅일날이 들어서 냅일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냅일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여기며 엄매와 나는 앙궁 위에 떡돌 위에 곱새담 위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세기물을 냅일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 두고는 해를 묵혀 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아도 먹을 물이다

 

* 레이스 짜는 여자 - 김혜순 

송편을 찌다가
떡 반죽을 두 손으로 마구
짓뭉개고
침을 탁 뱉고
마구 내던지고 싶다가도
형형색색의 가지런한 송편
 
술을 따르다가
술잔을 내던지고
깨뜨리고
깨어진 술병을 들고
마구 찌르고, 뚝뚝 듣는
선혈을 보고 싶다가도
약간 떨며 술잔 모서리에
찰랑 알맞게
 
언제나 고요한 시선, 고요한 수면
하늘 한번 쳐다보고 한숨 한번 쉬고
불을 지피다가
불붙은 장작을
초가삼간 지붕 위로 내던지며
나와라 이 도둑놈들아
옷고름을 갈가리 찢고
두 폭 치마 벗어던지며
용천발광하고 싶다가도

문풍지가 한밤내 바르르 떨고
하이얀 식탁보는 눈처럼 짜여지고

 

* 추석날 아침에 - 황금찬 

고향의 인정이

밤나무의 추억처럼

익어갑니다.

 

어머님은 송편을 빚고

가을을 그릇에 담아

이웃과 동네에 꽃잎으로 돌리셨지.

 

대추보다 붉은

감나무잎이

어머니의 추억처럼

허공에 지고 있다. *

 

* 송편(松餠詩) - 김병연(金炳淵) 

手裡廻廻成鳥卵 - 수리회회성조란

指頭個個合蚌脣 - 지두개개합방순

金盤削立峰千疊 - 금반삭립봉천첩

玉箸懸灯月半輪 - 옥저현정월반륜

-

손바닥에 굴리고 굴려 새알을 빚더니

손가락 끝으로 낱낱이 조개 입술을 붙이네

금반 위에 오뚝오뚝 세워 놓으니 일천 봉우리가 깎은 듯하고 

옥젓가락으로 달아올리니 반달이 둥글게 떠오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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